
봄이 오는 길목에서 붉은 홍매화, 노란 개나리, 수선화 등 이름있는 꽃부터 이름없는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길고 추운 겨울을 보냈어도 그 누구도 이렇게 하나씩 펴서 겨우내 얼었던 땅과 앙상한 가지에 언제 새순이 돋고 꽃이 펴 세상이 꽃천지가 되겠느냐고 푸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매일매일 하나씩 하나씩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귀하게 여기고, 즐거워하는 것은 이렇게 꽃이 피다 보면 결국 꽃으로 뒤덮인 세상을 보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누가 보든 안 보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다른 사람이 하든 말든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건전하게 만드는 주인일 것입니다.
원불교의 정산종사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할 때 주인의 심경으로 하는 이가 있고 머슴의 심경으로 하는 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당한 일이고 바른 일이라면 자신이 하기 싫으나 하고 싶으나 남이 알아주나 몰라주나 간에 꾸준히 해나가는 마음이 주인의 마음이고, 다른 사람의 이목에 끌리어 마지못해하는 마음은 머슴의 마음이며, 공중의 소유를 내 것 같이 알뜰히 아끼고 이웃을 내 가족같이 알뜰히 챙기며 각자 처한 곳의 기쁨과 근심을 자기의 기쁨과 근심으로 알고 함께 나누는 것이 주인의 마음이며, 공중의 재산은 함부로 쓰고 소비하며 손상되어도 자기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불평이나 하며 남이 알아주는 것만 하며 생색내는 사람은 머슴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이며, 서로서로 얽혀 있다고 배웁니다. 누군가가 잘하면 그 결과가 나에게는 물론 세상에 미치며, 나의 잘못된 행동은 세상에 영향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원불교 교도들은 생활 속에서 각자 각자가 주인의 심경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 일어난 산불을 보며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던 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나 하나쯤이야’하는 안일함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 일어난 일은 많은 사람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을 남겼고, 어느새 나라 전체가 온 국민이 걱정하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며 우리의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처참한 현장에서 밤낮을 잊고 주인의 심경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계시는 분들, 전국에서 달려와 그 고통을 함께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산불로 인해 귀한 생명을 잃은 분들의 밝은 영로를 기원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께 위로와 죄송한 마음 담아 감히 그 고통을 헤아려 봅니다.
세상이 참 변하지 않고 점점 살기가 어려워진다는 느낌이 들면 ‘나 혼자 애쓴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나 혼자 바르게 산다고 세상이 좋아지기는 할까.’ 하는 푸념과 자포자기의 마음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조동화 시인의 시처럼, 나도 주인의 심경으로 살고, 너도 주인의 심경으로 살면 결국에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루하루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요즘, 맘껏 즐기며 평안하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