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타인에게 묻지도 따지기도 전에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 짐작하며 생각과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인생을 수십 년 살아 온 사람이면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는 것을 겪어봐서 알만도 하련만, 되려 ‘내가 살아 봐서 좀 아는데’라는 위험한 확신만을 공고히 장착하고 선을 넘어 한 걸음 아니 무조건 직진한다.
반면, 삶의 시간이 적은 수년의 인생을 살아온 아이들은 내가 아는 게 세상의 다라고 여기는 시기이다. 아직 경험도 많지 않고 세상에 대한 지식의 양과 깊이를 키우지 못했기에 ‘내 마음이 곧 네 맘이지’라는 굳건한 신념을 키우고 있다. 그렇기에 그 시기 아이들 또한 상대방과의 거리에 대한 선을 넘어 무조건 직진하려 한다.
그림책 <너는 뭘 좋아해?/조 로링 피셔/북뱅크> 속 주인공인 소피 또한 그렇게 직진하다 상처를 입는다. 소피는 늑대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소녀다. 늑대의 용감함과 빠름에 사로잡힌 소피는 집에서 늘 늑대 옷을 입고 늑대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늑대처럼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본인이 너무 좋아하는 옷이기에 학교에도 입고 가고 싶어졌다.
‘이렇게 멋진 옷을 입고 가면 다들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어 할 것 같았어요.’
결과 예상은 가늠이 될 것이다. 낭패를 본다. 소피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더니 급기야는 배를 잡고 웃는다. 집으로 뛰쳐 들어간 소피는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소피는 다 해 본다. 덩치가 산만큼 큰 곰에게 용기 내어 ‘저리 가! 너랑은 안 놀아!’라고 소리도 쳐 본다. 친구들에게 들어서 상처받은 말이다.
사실 이 말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를 지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마음 상태가 반영된 말이기에 상대보다 나의 마음을 우선시해야만, 용기를 내야만 나올 수 있는 말이기에 그렇다. 소피는 용감해진 이 기분을 즐긴다. 그러나 그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곰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안다. 곰을 받아들인다. 옆에 나 아닌 타인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피는,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판타지의 힘이다. 아이들은 혼자 있거나,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공간에서 이야기 꾸미며 서사의 힘도 키우고, 이루고 싶은 것을 상상하며 시각화하여 현실에서 시도 해 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편한 방법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상상의 세계에서 용기 냈을 때의 쾌감을 맛을 본 소피는 ‘용감해진 기분은 정말 좋아요. 용감한 마음을 언제나 소중히 챙겨 다녀요.’ 한다. 아이들에게 ‘작은 목표부터 정해서 해봐! 성취감을 맛봐!’라고 그토록 말해주는 이유다. 요즘 항간에서 유행하는 설정한 목표를 이룬 시점의 상황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과 맥이 통하는 부분이리라.
‘나는 이게 좋은데 저 사람은?’이라며 생각을 잡아 둔다면? 눈 한 번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을 잡아 잠깐 생각을 멈추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그 모습 그대로 본다면?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눈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이 나와 달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나와 달라도 동행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책에서 배우든 좋은 어른의 행동에서 배우든 내가 나에게서 배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