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이욱 충북대 사대부고 교사
  • 승인 2025.04.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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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용구사

매년 윤동주를 가르친다. 윤동주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부끄러움’이다. 식민지 시기에 지식인의 고뇌를 부끄러움의 정서로 승화시켜 표현한 구절은 많이 있지만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을 많이 좋아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구실로 정의와 양심을 애써 외면하는 자아를 억지로 직면시키는 뼈아픈 통찰이고 자아 비판이라 생각한다.

초임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공한 인생의 척도로 여겨지는 사회의 대학 서열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평소에는 진로에 대해 말하며 진로, 적성, 꿈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게 “현실은 냉정하니 너희는 이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서 살아남아야한다. 나아가 성공을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서열의 대학에 가야한다”고 말하는 나 스스로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갓 사회에 나온 나는 내가 만든 사회 시스템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 불편함을 무마시켰다. 오히려 너희가 좋은 대학에 가면 이 체계를 더 공고히 하기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말을 덧붙일 때도 있었다.

교직 생활이 길어지고 나이를 먹어가며 불편함이 죄책감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여전히 내가 의도해 만든 사회 시스템은 아니지만 나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위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당연한 것이 인정되고 불의한 것이 비판받는 사회를 만들기위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환대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가?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학교 밖을 보면 가슴이 무겁다. 우리 사회의 풍경은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가치가 얼마나 취약한지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원칙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윤동주가 시대의 혼란을 보며 했던 생각들을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교과서에 실린 원칙과 정의는 교실 안에 머물고, 교실 밖 현실에서는 다른 법칙이 작동하는 듯하다. 공동체의 가치와 원칙, 교과서에 적힌 민주주의의 원리가 현실의 권력 앞에서 휘둘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사로서 나는 교과서에 쓰인 원칙을 가르치지만, 그 원칙이 현실에서 무력화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야 하는 이중적 상황이 안타깝고 가슴이 저린다. 이런 모순 속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윤동주의 시구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교실에서 원칙과 이상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무너질 때 침묵하는 것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가.

교사로서 겉으로는 점잖게 교과서적 가치를 가르치지만, 내면은 현실의 모순 앞에서 씁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적인 공동체의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자이면서도, 그 가치가 훼손되는 현실 앞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교사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단순히 입시를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통해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인가? 윤동주가 식민지 시대의 모순 속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했듯이, 나 역시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교육자로서의 양심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이제 열다섯이 된 학생들에게 잠자는 시간 이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책상 앞에 있기를 강제하는 현실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수능 모의고사 결과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고등학생의 공부는 방과후 개인 시간을 절대적으로 투자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나는 또 다시 학생들과 윤동주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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