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마다 푸른 옷을 벗고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선재길의 가을 풍경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고운 단풍잎에 잘게 부서지는 햇빛은 눈이 부시게 찬란했으며, 차창 밖으로 팔을 쭉 뻗어 손바닥을 펼치면 손을 감싸 쥐는 바람이 비단결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내 안의 모든 욕심이 옅어지는 듯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며 느낀 선재길 첫 번째 여행이었다.
가을이 돌아왔다. 선재길의 그 느낌이 잊히지 않아 자전거로 선재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단풍은 더 아름다웠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는 청량했다.
오르막인 듯 아닌 듯 완만한 경사에 숨이 차 오르기도 했지만 반대로 마음은 가벼워지고 숲의 고요가 마음에 스며들었다.
가을이 왔다. 전나무숲길부터 느릿느릿 걸어 보았다.
하늘을 향해 솟은 전나무들. 그 아래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숲속에서 다람쥐가 그 날랜 몸을 보여주다가 사람들 소리에 놀라 몸을 숨겼다. 이내 다시 세상이 궁금한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살폈다.
이름 모를 새들도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있었다.
아마 새들보다 더 여리고 작은 생명들도 숲을 지탱하며 숲의 가족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동차로 빠르게, 그다음 해에는 자전거로 좀 더 느리게, 세 번째는 걸음걸음으로 다녀온 오대산 선재길은 각각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안의 욕심이 헐거워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 평화로움이 자연의 품속에 기대어 얻는 가장 큰 행운이리라.
금강교를 건너기 전, 주차장 주변에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파는 노점들이 있다. 세 번째 선재길 걷기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노점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일반인이 아닌 스님이 붉은색 비트를 가득 쌓아 놓고 팔고 있었다.
평소에 주먹만 한 비트만 보다가 커다란 비트를 보니 호기심이 동했다. 스님이 노점을 열어 판매하는 것도 궁금해졌다. 연유를 물었다. 비트를 심었는데 충분히 먹고 남을 것 같아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비트는 개당 천 원 헐값이었다. 비트 열 개를 사서 포대에 담으니 가득하다.
발우공양을 하며 먹는 일도 수행으로 여기는 스님들이니 남아도는 비트를 노점에 가지고 나온 것도 수행의 일부였으리라. 세 번째 선재길에서 돌아오며 마음은 가볍게, 비트는 무겁게 싣고 돌아왔다.
비트는 무처럼 그리 친숙한 뿌리채소는 아니다. 활용도도 무처럼 일반적이지 않아 보통 피클이나 즙으로 많이 사용된다. 여느 붉은색 채소가 그렇듯 비트도 몸에 좋은 많은 영양성분을 가지고 있다.
섬유질과 수분이 많은 비트로 차로 덖으려면 무처럼 꾸들꾸들 말려 덖는 것이 수월하다.
요즘에는 그냥 말려서 차로 우려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도 괜찮기는 하지만 비트 특유의 흙냄새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다. 팬에 여러 번 덖어 차로 만들면 비트 특유의 냄새를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고 구수한 맛을 낼 수 있어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비트 차에 `마리골드' 서너 송이 함께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금세 다관을 붉게 물들이는 찻물이 선재길의 단풍과 상원사 공작단풍처럼 붉고 곱다.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아름다운 오대산 선재길과 전나무숲길이 떠오른다. 그리움에 찻잔을 어루만지니 그 숲길을 걷고 있는 듯 소란스러운 마음이 고요해진다.
시간의 문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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