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말했다. 기술만 있으면 평생 먹고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기술이 있으니 눈치 볼 일 없고 정년이 없으니 노후가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기술보다 학벌과 학력이 대접받는 세상에서 기술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기술 강국을 앞세워 기술만이 살길인 양 말하지만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따갑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귀하고 낮은 직업은 존재한다. 기술자를 우대하지 않는 사회에서 기술자들은 그저 블루칼라에 불과했다. 특성화고는 일반계고에 진학할 성적이 부족한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학벌, 학력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가늠하다 보니 특성화고 학생들은 취업보다는 진학을 선택한다.
최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4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전국 577개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55.3%로 진학률(48.0%)보다 7.3%p 높다. 충북 역시 도내 26개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52.5%로 진학률(50.5%)보다 2%p 높다. 교육당국이 발표한 숫자만 보면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진학보다는 취업을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아하다. 올해 전국 특성화고의 졸업자 6만3005명 중 취업자는 1만6588명인 반면 대학을 선택한 진학자는 3만216명으로 두배 가량 많다. 충북 특성화고도 마찬가지다. 졸업자 3054명 가운데 대학 진학자는 절반 가량인 1543명이다. 반면 취업자는 고작 732명에 불과하다. 교육 당국이 계산하는 취업률 방식이 다를 수는 있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보다는 진학을 더 많이 선택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충북도교육청이 매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들을 대상으로 고교 진학 희망 조사를 실시하지만 특성화고 진학 희망 비율은 매년 하락하는 반면 일반고 진학비율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일반고 진학 희망 비율은 84.8%로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특성화고 진학 희망 비율은 지난해 9.6%에서 0.2%p 떨어진 9.4%로 역대 최저를 나타냈다.
도내 특성화고등학교들은 11월이면 신입생 모집에 사활을 건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힘들게 뽑아놔도 일반고로 계열전환을 통해 빠져나가거나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교명도 바꾸고 학과 개편도 해 보지만 무용지물이다.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홍보를 하는 것도 학부모 민원에 제대로 하지 못한다.
몇 해 전 퇴직한 한 중학교 교장은 학생들에게 특성화고의 장점을 얘기했다가 학부모의 항의 전화에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대학 가야할 아이들한테 쓸데없이 바람을 넣었다는 게 이유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제자들이 취업 현장에서 대졸자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대입 원서를 쓰겠다고 찾아오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는 교사의 이야기가 우리가 기술을 대하는 민낯인지도 모른다.
학벌에 대한 벽이 깨지지 않는 한 고졸신화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 순위라며 `의·치·한·서·수·약·연·고'(의대·치대·한의대·서울대·수의대·약대·연세대·고려대)를 주문처럼 말한다.
한때 고졸 신화를 부활하겠다며 정부 차원에서 고졸 채용을 정책적으로 확대한 적이 있다. 금융권은 물론 공공기관, 국책기관까지 고졸 졸업자를 일정 비율 채용토록 했다. 당시 학교 현장에서는 계열 전환으로 일반고로 빠져나간 인원보다 특성화고로 전입한 인원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은 사라졌고 고졸 채용도 거의 찾기 힘들다.
교육 당국이나 교육청 차원에서 아무리 특성화고 활성화 정책을 내놓아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기술보다 대학 졸업장이 대접받는 사회에서 당연한 결과 아닌가.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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