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별전(敎外別傳)이란 말이나 문자를 초월한 가르침이다. 진리는 경전이나 말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뜻으로 불교 선종(禪宗)에서 중요시 하는 개념이다. 삼처전심(三處傳心)은 대표적인 교외별전이다.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는 뜻이다. 그 마음 보낸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그 마음 받은 이는 마하가섭이다.
마하가섭은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한명이다. 가섭은 부모가 나무의 신에게 기도까지 해가며 어렵게 얻은 귀한 늦둥이였다.
부모는 가섭이 당연히 대를 잇기를 원했지만 가섭은 간절히 출가를 원했다. 그러나 가섭은 효자였다. 결혼은 했다. 순결 지켜가며 유지하던 결혼생활은 부모님이 세상 떠나시며 끝이 난다. 12년의 세월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머리 깎고 출가를 한다. 부부동반 출가였다. 같이 걷던 길에서 갈림길 나오자 둘은 그길로 헤어진다. 훗날 그의 부인도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된다. 그렇게 출가하여 만난 스승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가섭은 남달랐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지 8일 만에 깨친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부처님께 바치며 가르침에 대한 예를 표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입고 계시던 분소의(糞掃衣)를 물려받는다.
분소의는 묘지 같은 데 버려진 헝겊 조각들을 모아서 만든 누더기다. 그 당시는 수행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은 의발(衣鉢)이었다. 겨우 걸치고 빌어먹을 때 사용하는 옷(衣)과 발우(鉢盂)다.
선가에서 유래된 스승이 후계자를 정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의발을 물려준다는 그 말 여기서 유래됐다. 마하가섭은 번뇌의 티끌을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했다고 하여 두타(頭陀)제일이다.
가섭은 부처님 애제자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에게 당신마음 마음 세 번씩이나 전했고 그중 한번은 열반하시고도 전했다.
그 마음 처음 전한 곳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영취산(靈鷲山)이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은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법(說法)한 법회다. 마하가섭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했다. 그래서 가섭은 이날 법회에 조금 늦었다. 도착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무 말 없이 한 송이 꽃을 들고 계셨다. 마하가섭은 그 뜻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마음 전한 또 한곳은 다자탑이다. 비사리성의 서북쪽에 있는 탑이다. 가섭도 그 날 법회가 다자탑 앞에서 열린다는 전갈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늦게 들었다. 당연히 늦었고 이날은 앉을 자리도 없을 만큼 늦었다.
자리가 없는 그를 위해 부처님은 당신자리를 나누어서 앉도록 했다. 이것이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다.
가섭은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에는 칠엽굴에 머물고 있었다. 부처님이 열반 하신 쿠시나가라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왔겠지만 당연히 늦었다. 이번에 몇 시간 늦은 게 아니라 며칠이 늦었다. 도착 했을 때는 입관은 진즉에 끝났고 다비식만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정상참작도 어렵다. 부처님의 또 다른 제자 아난에게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씨알 당연히 안 먹혔다. 부처님의 다른 제자들 눈에는 두타제일 가섭은 이미 지각제일 가섭이었다. 가섭은 관 앞에서 슬피 운다. 스승님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한 애제자는 늦게 도착한 죄송함을 담아 서럽게 울었다.
그 마음 통했을까. 또 통했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마지막으로 마음 전하신다.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발을 내미신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삼처전심 곽시쌍부(畔示雙趺)의 전말이다.
내내 의문이었다. 부처님은 항상 늦는 가섭에게 왜 늘 너그러우셨을까. 이제야 그 가르침 겨우 알 것 같다.
`사랑한다면 믿고 믿는다면 기다려라'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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