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단자 쌍화차
유자단자 쌍화차
  • 이연 꽃차소믈리에
  • 승인 2024.11.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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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사흘 내내 김장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도 일 년 동안은 김치 걱정은 내려놓아도 되니 마음은 홀가분하다.

내가 김장하며 애를 쓰는 시간은 고작 사흘이지만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은 각기 다른 계절을 품고 견뎌낸 것들이다. 이 모든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숙성되고 입맛 돋우는 김장 김치가 되기까지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더불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몸살 기운 때문인지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차 한 잔이 간절하다.

작년에 만들어놓은 한 개 남은 마지막 유자단자 쌍화차를 주전자에 넣고 가스 불을 켠다. 쌍화차 특유의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머그잔 가득 따라 향을 음미하며 마신다.

유자의 새콤한 맛과 여러 한약재의 맛이 어우러져 온몸에 퍼진다. 몸에 돌던 한기가 사라지고 따듯해지며 온기가 돌아온다.

된서리가 내리고 나면 지상의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다음 해를 기약한다.

이때쯤이면 더 이상 꽃차의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식물의 뿌리나 열매들로 차로 만든다.

그중 하나가 유자를 이용한 유자단자 쌍화차다. 한가지 꽃으로 제다를 할 때보다는 손이 많이 가고 시일이 오래 걸려 나도 좀처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차이기도 하다.

독성을 제거한 약재들을 잘게 썰어 버무리는 일도, 속을 파낸 유자단자에 버무려진 약재를 넣고 속이 빠져나오지 않게 무명실로 묶는 과정도, 찌고 말리고를 반복하며 구증구포하는 과정도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놓으면 두고두고 요긴하게 달여 마실 수 있어 좋다.

평소에도 좋지만, 감기 기운이나 몸살 기운이 있을 때는 특히 더 진가를 발휘하는 차가 유자단자 쌍화차다.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구증구포하며 발효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이 어우렁더우렁 서로를 품고 품으며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건너야 깊은 맛을 낼 수가 있다.

쌍화차의 효능은 굳이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기력을 회복하고, 몸을 따듯하게 하며, 피로 해소에 좋다는 것쯤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으리라.

쌍화차를 한방차의 대표주자라 우겨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또한 품격이 있는 차이기도 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 안는다. 따스한 온기가 차가워진 손바닥을 녹여준다.

며칠 동안 여러 가족이 먹을 김장을 하느라 몸살이 나서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그 힘든 과정을 매해 견디며 하게 되는 것은 김장 김치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맛과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재료들이 섞여 버무려지고 통에 담겨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지는 시간을 지나는 과정은 쌍화차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묘하게 닮았다.

똑같이 여러 가지 재료가 섞여 버무려지고 어우러지며 숙성되는 시간도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 김장 김치나 쌍화차는 우리 입을 즐겁게도, 건강하게도 한다는 것이다.

김장도 끝냈고 겨울 채비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11월은 유자의 계절이다. 오늘 마지막 남은 유자단자 한 개를 써버렸으니 올해는 유자단자 쌍화차를 만들 생각이다.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넉넉하게 만들어 지인들과 차를 달여 마시며 어우렁더우렁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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