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양성산성과 미천리 고분군 그리고 대청호
청주 양성산성과 미천리 고분군 그리고 대청호
  • 서문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조사2팀 주임연구원
  • 승인 2024.10.13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청주는 명실상부한 중부내륙 최대 거점 도시로, 금강을 따라 형성된 주요 교통로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이 지리적 특성은 청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금강을 끼고 양성산성과 미천리 고분군과 같은 유적들이 이 지역에 자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양성산성은 해발 약 500m의 양성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현재에도 성에서 대청호와 그 주변이 훤히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이다. 양성산성은 삼국시대 백제 혹은 신라의 일모성 또는 일모산군으로 불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양성산성의 축성과 관련된 기록은 자비마립간 17년(474)에 일모성을 쌓았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이다. 이 일모성과 함께 등장하는 다른 성곽은 사시성(옥천군 이원면), 광석성(영동군 영동읍), 답달성(상주시 화서면), 구례성(옥천군 옥천읍), 좌라성(영동군 황간읍)인데 이 성들은 모두 소백산맥을 너머 금강유역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이 시기에 신라는 금강중상류역을 모두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고려 초에는 이곳에 연산진이 설치되어, 당시 고려 왕조가 북방의 침입을 막고 중앙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연산진은 청주 일대의 군사적, 행정적 중심지로 기능하며, 양성산성의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러한 흔적은 양성산성 인근의 미천리 고분군에서도 나타난다. 가까이에 위치한 보은 삼년산성 고분군과 비슷한 시기에 조영된 이 고분군은 금강을 따라 발전한 교류와 교역의 흔적을 담고 있다.

특히 미천리 고분군이 주목되는 이유는 이른바 `미천리식 굽다리접시'라고 불리는 유물의 존재이다. 미천리식 굽다리접시는 연갈색과 주색을 띠는 연질의 굽다리접시인데, 외형은 신라토기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색조나 소성도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초 보고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이 미천리식 굽다리접시는 미천리 고분군의 표지 유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고대 대청호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가장 직접적인 흔적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대청호는 금강 상류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조성되었다. 대청호 주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인근의 다양한 문화유산들은 청주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이러한 유적지와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문화유산과 자연을 결합한 체험형 관광이 각광받고 있다.

청주의 남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양성산성과 미천리 고분군, 대청호는 역사 탐방과 자연 속 힐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이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안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아직까지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양성산성과 그 일대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사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적절한 스토리가 가미된다면 더 풍부한 콘텐츠가 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주의 양성산성, 미천리 고분군, 그리고 대청호는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역사적 교통로 위에 위치하며, 그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청주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오늘날 이 유적들은 최신 트렌드와 결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청주의 유산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보존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들 유적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