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알림이 울린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주간 보호센터 밴드에 글과 함께 활동사진이 올라온 것이다.
열어 보니 오늘은 생일잔치 동영상과 투호 놀이하는 사진이 올려져 있다. 통속에 들어간 화살은 없는데 어머니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다.
어머니가 주간 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건 봄부터다. 작년 늦가을에 우리 집으로 오신 후 겨우내 집에만 계셨다.
온종일 TV를 틀어 놓고 침대에서 자다 깨다 하며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누워서 지내셨다. 활달하고 사교성이 좋은 성격이라 진즉에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기를 권했는데 어머니는 선뜻 결정을 못 하셨다.
골다공증이 심해 혹시라도 왔다 갔다 하다 다칠지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3월부터,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두기로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매일 일찍 일어나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신다.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미안해하며 “내가 애기가 됐어.” 하신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보행기가 필요하듯 어머니는 걸을 때 유모차처럼 생긴 보행기를 밀고 다닌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갔던 것처럼 어머니도 매일 봉고차를 타고 주간 보호센터에 나간다. 주간 보호센터를 일명 `노치원'이라 부르는 이유기도 한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었던 아기를 어엿한 어른으로 돌봐 키우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반대로 아기처럼 돌봄이 필요해진 것이다.
아침이면 나는 센터 차를 타고 떠나시는 어머니를 손 흔들어 배웅하고 들어온다. 그리고 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보행기를 가지고 나가 어머니를 마중한다.
우리 애들이 어렸을 적, 엄마 떨어지는 게 불안한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차가 출발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고, 돌아올 때 기다렸다 맞이해주던 그때처럼 말이다.
아기 때는 몸에 비해 큰 머리 때문에 앉거나 서도 중심이 불안정하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삶의 경험이 오래 쌓여 무거워진 머리로 인해 가끔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가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어머니가 꿈 얘기를 하셨다. 꿈에 아버님이 나타나 자꾸 오라고 손짓을 하더란다. 그런데 어머니가 싫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 얘길 듣는데 어머니의 복잡한 심경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들 며느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라는 생각과 `좀 더 지금처럼 지내고 싶다'라는 서로 다른 생각이 동시에 뒤섞여 혼란스러우신 듯싶었다. 그게 꿈으로 나타난 것일 테고.
어쨌든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신 후 어머니는 다시 예전의 유쾌한 모습이 돌아왔다. 물론 기력은 많이 쇠하셨다. 경사로를 올라올 때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드리면 한결 수월하다 하신다.
하지만 생기 찬 표정과 목소리, 웃음을 되찾으셨다. 아직은 당신 발로 걸어서 센터에 다닐 수 있고, 식구들과 함께 먹고 얘기 나누는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계속 이대로만 지내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밴드의 사진을 내려받아 어머니 폴더로 옮기다가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각자 흩어지고 나면 붉게 물들었던 노을도 어느새 사위어 길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혼자라는 생각에 갑자기 무섭고 슬퍼져서 “엄마!” 소리쳐 부르며 뛰었던 기억이 난다. 곧 안전한 집에 당도하리란 걸 알면서도 매번 그랬다.
바라건대, 어머니의 집 가는 길이 너무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많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