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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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4.10.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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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쇼윈도의 마네킹이 되어본다. 허리춤에 한 손을 괴고 한 손은 앞으로 적당히 꺾어 들고 턱은 도도하게 치켜 올린다. 쇼윈도 안에서 난연히 서 있는 마네킹 표정도 따라 한다. 거울 앞에 볼록한 아랫배는 힘 주워 감추고 여러 포즈를 취한다. 발목 위까지 차랑거리는 원피스, 적당히 잡힌 허리선과 넓은 어깨끈이 포인트다. 진종일 만든 원피스를 입고 모델 쇼를 하는 내내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여러 번 옷을 만들어 입지만 이번은 홧김에 만든 원피스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간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 정리를 하던 중 서운한 일이 생긴다. 옷장을 뒤적이니 행거마다 무겁게 걸려있는 옷가지들, 철철이 사들였건만 아무리 들춰도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보이지 않는다. 괜스레 짜증이 난다. 가족들은 본체만체 무심하다. 그 많은 옷 중에 대충 고르라며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그 한마디는 나의 마음을 겨울 한복판에 세워놓는다. 옷 방에서 서성거리는 내내 비수처럼 꽂힌 가족의 한마디가 서럽게 파고든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별말 아님에도 내 가슴에는 찬바람이 휑하니 일고 공허하다. 이내 까칠하게 변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옷장 문을 `꽝' 닫으며 분풀이로 대신한다.

나의 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못내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달도 차면 기울어지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철들지 않았나 보다.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섭섭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커피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랜다. 그날, 앉은뱅이 재봉과 양재 용구가 있는 다용도실을 이리저리 들추며 원단을 꺼낸다. 하룻강아지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겁 없이 옷을 만들어 본 적도 없으면서 원단 시장에서 보들보들한 몇 가지의 코르덴 원단과 양장 원단을 준비한다. 부자재 단추와 한복 노리개와 바느질 용품까지 준비하여 생활한복을 종종 만들어 입는다.

치민 화를 삭일 겸 단아한 곡선의 혼을 담아 우리의 옷을 독창적으로 창작한다. 신문지 두 장을 겹쳐 패턴을 그려 재단한다. 종이옷이지만 눈대중으로 우리의 옷을 만들어 입어본다는 기쁨에 가슴이 쿵쾅쿵쾅 널뛴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양장 저고리와 허리 치마를 굵은 실로 시침하여 가봉한다. 저고리 동정은 같은 원단을 한 겹 덧 대여 두툼하게 만든다. 짧은 한복 저고리 대신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생활한복 저고리에 옷고름은 똑딱단추를 단다. 그 위에 매듭단추로 마감하여 고고한 멋을 더 한다. 팔 폭 열두 폭 한복 치마보다 허리 부분에 주름을 잡아 일상생활에 편리한 허리 치마로 마감한다. 눈썰미가 좋은 나는 생활한복을 만들어 독창적인 개성을 살린 옷을 입으니 소소한 행복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복은 곡선이고 양장은 직선 같다. 몸에 흐르듯 흘러내리는 한복 치마의 선과 속살이 보일 듯 말 듯 우아한 저고리 곡선은 한복의 맵시다. 그래서 곡선인 한복 애칭으로 `바람의 옷'이라 한다. 일상에서 예복과 평상복으로 입는 양장은 직선이다. 깔끔하게 평면 재단하여 직선으로 박음질하여 몸에 맞춤의 옷이다. 직선의 양장은 젠틀한 매력이있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우리나라 대표 의복 한복은 특별한 날 입는 것보다 늘 일상에서 입는 생활한복은 덧없이 실용적이다. 전통한복보다 조금 변형되었지만, 우리 고유의 멋과 단아함을 살려 철릭한복으로 더욱 멋스럽게 만들어 입는다.

그 실력을 더듬어 멜빵 원피스를 재단한다. 허리춤은 넓은 끈으로 조여들게 만들어 주름을 잡아 원피스를 완성한다. 하나뿐인 나만의 원피스를 걸어놓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무심하게 툭 던진 서운했던 가족의 한마디는 나에게 디딤돌이 되어 또 하나의 창작품이 탄생한다. 언어를 이해하면 삶의 변화가 온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찬바람처럼 가슴을 스친 무심하고 야속한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원피스를 만들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리라. 그 말이 나를 깨웠으니 외려 감사하다. 마음까지 녹여 준 나만의 옷을 늘 특별하게 입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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