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이번처럼 덥고 긴 여름은 처음이다. 팔순을 내다보는 우리 아버지 말씀이다. 내 인생에도 올여름은 지독한 습기와 더위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지구가 얼마나 더 이보다 더한 여름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에서는 9월 중순에 습기로 고생하지는 않았는데 이런 계절적 부조화는 우리의 삶을 괴롭히기에 충분하다.
고등학교 때 작곡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알려주신 작곡 과정의 가장 큰 핵심이 있다. `반복'과 `변화'이다. 반복과 변화를 설명하시면서 3번 이상의 반복은 피하고 잦은 변화는 곡의 안정을 해치므로 `조화롭게' 다룰 것을 말씀하셨다. 곡을 만들 때 이 개념은 정말 유용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음악에 예외가 없을 리 없다. 반복과 변화에 의한 조화라는 룰을 깨고 지루함으로 승부하는 음악도 있다.
바로 지속 저음, 드론 베이스라고도 한다. 화성과 선율에 관계없이 저음에 쭉 깔리는 음으로 곡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혹은 꽤 긴 부분 동안 울린다. 이것은 베토벤의 유일한 회화적 성격의 교향곡인 6번 `전원' 1악장의 제1주제 선율에도 등장하여 전원 풍경을 표현하기도 한다. 곡을 들을 때 저음을 알아채기 어렵다면 백파이프 연주곡을 들으면 드론음이 깔리는 것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베이스 음은 촌스러움, 부자연스러움 등을 나타낼 때 상투적으로 사용한다.
작곡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화성학을 배운다. 화성학이란 선율과 화음을 만드는 방법을 다루는 음악 이론인데 조화로운 음을 선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화성학을 배우면서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는 규칙이 정말 많은데 이걸 다 지키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려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원칙을 깨도 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비화성음이다. 일탈을 종용하는 내용이라니 짜릿하지 않은가? 비화성음 중에서도 허용되는 일탈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데, 가장 약한 것이 경과음과 보조음(이웃음)이다. 쉽게 설명하면 코드에 어울리는 두 음 사이에 살짝 끼워 사용하는 안 어울리는 음이다. 약박에 흘러가듯 사용하기 때문에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좋기만 하다. 학생들에게 주요 3화음으로 8마디 선율 작곡하기를 과제로 내어주면 처음에는 멜로디에 도약음과 아르페지오만 등장하는데 비화성음을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경과음과 보조음을 활용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의 멜로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좀 더 심한 일탈은 전과음이다. 전과음이란 갑작스럽게 등장한 강박의 불협화음인데 곧 어울리는 화음에 편입되면서 해결된다. 보통의 불협화음은 약박에서 살짝 스쳐 지나가거나 강박에 있더라도 앞에서부터 계류해서 사용하기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허나 전과음은 강박에 ` n!'하고 안 어울리게 등장한 후 이후에 어울림 화음을 써서 해소되는 효과를 주면서 음악에 긴장과 이완이라는 매력을 더하게 된다.
반복과 변화도 조화롭게 사용해야 하고 비화성음도 정도가 있게 사용하는데 드론 베이스는 이것을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저음을 차지하고 울린다. 그런데 이것이 또 이유가 있다. 악기의 원리(백파이프, 중앙아시아의 여러 현악기 등)가 그렇고 그런 음향을 즐겨 사용하는 민족 혹은 시기가 있었으며 이런 음향으로 의미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고집스럽게 열을 내고 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조화'를 만들어 내야 할 시기임을 바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구 온도가 조금만 더 오르면 인류가 멸명한다는데 으름장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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