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과 `스위스 치즈 이론'
`스쿨존'과 `스위스 치즈 이론'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4.09.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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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민식이법'을 들어봤을 테다.

2019년 9월 충남 아산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차량 사고로 아홉 살배기 김민식군이 세상을 떠났다. 그곳에는 신호등, 과속단속카메라, 과속방지턱 등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시설물들이 하나도 없었다.

민식이법은 김군의 이름을 따 개정된 것으로, 스쿨존 내 무인단속 카메라와 신호기 설치 의무와 함께 어린이 교통 사망사고 시 최대 무기징역을 받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했다.

대한민국의 어린이보호구역 `스쿨존'은 1995년에 도입됐지만 아직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민식이 사고보다 2년 앞선 2017년, 청주에서도 한 명의 생명을 잃었다. 민식이 사고와 다르게 이 사고를 기억하는 이들은 유가족과 친인척, 학교, 그리고 당시 사고를 취재했던 경찰출입기자들 뿐일테다.

그해 6월15일 오후 3시25분쯤 11살된 배모군은 청주시 옥산면 도로 가장자리를 걷다 뒤에서 오는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사고 후 아무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나 1시간 가량 노선을 따라 계속 운행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배군은 사고 당일 학교를 마치고 영어학원 수업을 받은 뒤 집으로 향하던 길에 변을 당했다. 사고 후 경찰과 유관기관은 옥산면 어린이보호구역 도로 시설을 정비했다. 도로교통공단과 사고 지점 현장 점검을 한 경찰은 사고 지점 노면 표시 재도색, 미끄럼방지 포장 등 도로 시설 보수작업을 완료했다.

이후 충북경찰은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에 나서겠다며 2023년까지 어린이 보행자 사망·중상사고 `제로'를 목표로 △주 통학로 보도 신설 △보행공간 확보 △제한속도 시속 20㎞ 구간 운영 △무인단속카메라 설치 △주정차금지 전 구간 지정 등 사업을 시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충북의 스쿨존은 여전히 위험하다.

충북은 예전부터 스쿨존 교통사고 취약 지역으로 꼽혀왔다. 원인으로는 안전 환경 조성 미흡이 지목된다. 이런 까닭에 매번 각종 조사 지표에서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고 있다.

최근 6년간 충북지역 스쿨존에서 과속·신호위반으로 무인단속 카메라에 적발된 건수는 2만8000여건이다. 연평균 4600여건이다.

가장 많은 차량이 적발된 곳은 `청주 운천초 앞', 뒤이어 제천 남당초 앞(2만2115건), 진천 금구초 입구 교차로(2만1784건), 청주 직지초 앞(1만8754건), 청주 서원초 앞(1만8244건), 충주 우암유치원 앞(1만7938건) 순이다.

충북에서는 올해 들어서도 7월까지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7건 발생했다.

시설 정비 등 적극적인 사고 예방책이 절실하다.

큰일이 터져 비난여론이 들끓으면 그때만 집중해 호들갑을 떨고,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두더지 잡기 게임식' 대응은 버려야 한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이 내놓은 `스위스 치즈 이론'.

겹쳐 놓은 여러 장의 치즈 구멍이 우연히 일치했을 때 사고가 터진다는 이론이다.

스쿨존 내 사고는 운전자의 안전의식 결여가 근본적인 문제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필수조건이다.

직접 당사자인 학교, 그리고 경찰, 지자체는 서로 미룰 게 아니라, 함께 책임감을 느끼고 스쿨존 위험 조사에 나서야 한다. 손 놓고 있는 게 비난받을 일이지, 점검을 자주 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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