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씨
만학도씨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4.07.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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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어머니하고 매일 아침 영상으로 통화를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전에는 목소리로만 통화를 했었는데, 아버지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신 이후부턴 영상으로 통화를 하다 보니 어머니의 표정이나 일상을 훨씬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늦잠을 주무신 날은 아침이 늦어져 식탁에서 전화를 받으신다. 피곤하실 때는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전화를 받으시기도 하고, 어느 날은 운동 기구에서 페달을 돌리면서 전화를 받으시기도 한다. 병원, 차 안, 나무 그늘….

전화기 속에 보이는 배경이 어머니의 일상을 여과 없이 내게 전해준다. 물론 어머니도 내 일상을 훨씬 소상하게 파악하고 계실 것이다. “어? 오늘은 학교 안 갔나 보네?” 내가 소파에 앉아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는 금방 알아 채신다. “거기는 어디여? 아름드리 나무가 좋으네.” 학교 도서관 앞에 있는 큰 나무 아래서 전화를 드리면 이렇게 말씀을 꺼내신다.

그런데 엊그제는 전화를 건지 한참만에 전화를 받으셨는데 황급히 전화를 받느라 상기된 표정이셨다. 전화기 속 배경은 실내, 집이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 거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안방 테레비에서 충청대 실용음악과라는 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들어갔지. 볼려고… 그러다가 전화 소리 듣고 뛰어 나와서 받느라고…”

충청대 실용음악과란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셨단다. “애비랑 같이 공부하는 사람 중에 노래 하는 사람 있어? 그 사람 얘기가 방송에 나오데.”“노래 하는 사람? 나랑 같이 공부하는 사람은 다 노래 하는데?” “내가 흉내는 못내겠는데, 무슨 노래인지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그 사람 나중에 음반도 내고 싶다고 그러던데?”“음반? 다들 음반을 내고 싶어 하는데요? 누굴까…?” “가만 있어봐, 그렇잖아도 내가 물어 볼려고 테레비 보면서 이름을 적어 놨어. 끊어 봐. 내가 적어 논 이름을 보고 다시 전화할테니….”

지난 번 청주 KBS에서 윤인중 교장의 퇴직 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으로 본 적이 있었던 터라, 아마 윤인중 교장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어머니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알아 냈어. 내가 이렇게 이름을 적어 놓았지.” 하면서 어머니는 메모해 놓으신 이름을 읽으셨다. “이름이 만학도네. 만학도란 사람 있어?” “만, 학, 도?” “응, `충청대학교 만학도'라고 테레비에 그렇게 써 있었어.”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윤인중 교장의 이야기를 전국방송으로 소개하면서 `충청대학교 실용음학과 만학도'라고 자막으로 송출한 모양인데, 어머니는 그 자막에 쓰여 있던 `만학도'를 이름이라고 착각하셨던 것이다.

“어머니, 만학도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잖아요. 느즈막히 공부하는 사람, 내가 만학도잖아요.”하며 웃자, 그제서야 어머니도 “그거였어?” 하시면서 따라 웃으셨다. 만학도도 구별 못한다고 나이탓, 머리탓, 신세탓을 해 가며 둘이 서로 한바탕 웃고 떠들다가 전화를 끊었다.

늦게라도 음악을 시작한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어머니가 저리 좋아하시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음악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훨씬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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