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 중에는 `현모양처'도 있었다. 가부장제와 군사문화가 묘한 방식으로 만나 충·효·열을 강조한 시대의 사명에 부응한 나의 꿈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성리학 문화권 안에 살았던 조선 시대의 여인들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현모와 양처가 되기 위해서만 삶을 살았을까?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여성학자들이 객관적 자료를 통해 연구한 결과들을 토대로 조선시대의 여성들을 탐구한 책이 있다.
돌베개에서 펴낸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했던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박무영 외'이다.
이 책에는 `우리와 똑같은 조선 시대의 여성들이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가고 장악했던 다양한 방식들을 드러내고 싶다'라며 열네 명 여성들의 삶을 소개한다.
역사 기록 속에는 적으나마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균열시킬 만한 보석 같은 사람들이 숨어 있다며 현모양처로 덧칠되고 포장된 껍질을 벗겨내어 우리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트리기 위함이 출판 의도라 밝히고 있다.
태임과 태사는 중국 주나라 시대의 여인으로 동양 문화권에서 가장 현숙한 부인으로 간주된다.
이 책에 소개된 사임당, 윤지당, 정일당의 호는 모두 태임, 태사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남편이 일찍 죽어 자식을 낳지 못한 윤지당과 자식을 여럿 낳았으나 모두 일찍 여읜 정일당에게 태임과 태사는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로서의 모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고 작가들은 말한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태임과 태사를 현모양처가 아니라 성인으로 여겼기에 그녀들을 좇으려 했음을 인지하길 권하는 것이다.
신사임당(1504~1551)은 경전을 가까이 했으며 글도 잘 지었고 글씨에도 재주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바느질과 수놓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재주는 정밀했다. 그런 사임당의 재주를 이야기할 때 중요하게 거론하는 영역이 그림이다. 신라에 솔거에 대한 일화가 있다면 조선에는 그와 맞먹는 일화를 가진 사임당이 있다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림에 본인의 낙관조차 넣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은 그녀의 그림을 율곡의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라는 항목으로만 평가했다.
지금 우리는 예술가적 재능과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밝히는 당당함, 남편에게 자기가 죽은 후에라도 재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당찬 여인의 면모에서 사임당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매년 5월이면 `올해의 신사임당상'을 제정해 수여하는데 올해로 50회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 덕목 중에 `자아를 실현한 여성'도 있다 한다. 미미하지만 사임당 본연의 모습을 500년 후의 후손들이 찾으려 하고 있음을 그녀는 알까?
이 책에는 송덕봉, 허난설헌, 김호연재 등 문화의 절정기인 16세기에 살았던 여성의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지는 분기점으로 알려진 17세기 이후의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현모양처이지만 그에 앞서 여인이었음을, 한 인간이었음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현모와 양처를 위해 여성의 삶마저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뿐 아니라 여성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 아들들도.
역사라 함은,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함한 인간의 역사를 말한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을 따로 떼어 남성만의, 여성만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간 역사에서 배제 되어 왔던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복원하여 진정한 역사를 찾길 그리고 미래의 역사에서도 공존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