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노동'이 없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여태 우리는 `법'으로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노동'과 관련된 `법'이 없지는 않다.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자'가 단결하여 단체교섭이나 쟁의, 기타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보장하는 방법 등을 규정한 `노동조합법', 노동쟁의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사 간의 분규, 즉 노동쟁의를 예방 내지 해결함으로써 산업의 안정을 유지하고 나아가서 산업 및 경제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하도록 할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노동쟁의 조정법' 등 노동3법이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법 기초를 정하고 국가통치체제의 근본이 되는 최고의 법규로 정의된다. 최고 법규에 없는 `노동'이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에 등장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비해 수직적이고 수동적이다.
`근로'는 `힘을 들여 부지런히 일함'으로 국어사전에 정의되고 있다.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함'의 의미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손, 발, 두뇌 등의 활동으로 이루는 일체의 목적을 가진 의식적 행위'의 뜻을 가지고 있다.
`노동'과 `근로'는 각각 자발적 동력을 토대로 하는 노동자 개인의 의지와, 국가 또는 사용자 입장에 충실한 지배적 행위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는 차이가 확연하다.
대한민국 헌법의 `노동'관련 조항은 제32조에 정해져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②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③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④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⑤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⑥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근로'의 작은 따옴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강조한 것인데, 이를 모두 `노동'으로 바꾼다고 이상할 것이 없다. 심지어 정부 부처의 명칭도 `고용노동부'로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근로'라는 용어는 고용주체가 피고용대상자인 사람에게 근면함을 강조하는 자본의 지배적 속성이 있으므로 일제와 개발 독재시대가 낳은 불평등에 해당한다. `노동'은 `근로'보다 지극히 포괄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사람이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신성하고 주체적인 가치가 있다.
입법기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개헌 논의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대통령 연임제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삭제 등이 핵심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의 권력구조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정작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소중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중심의 정의는 거론되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가 고쳐질 기미를 보이지 않다는 것이 심각하다.
`노동'은 먹고 사는 일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신성한 권리인 동시에 의무에 해당한다. 살기위해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매일 한명이상 죽어나가는 끔찍한 나라의 오명은 `노동'을 `근로'의 이름으로 현혹하고 강제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사고'를 모면해 목숨을 부지하면서 퇴근하는 불안도 여전한데, 갑자기 69시간의 `근로'를 내세우며 `죽을 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가 강제되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실종된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가의 존폐가 달린 저출산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시간에 애를 낳고 키울 수 있겠는가.
과로사도 두렵고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위험천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