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 하방리에는 그 유명한 단양적성비(국보)가 있는 단양적성(사적)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이 단양적성은 1978년에 단국대학교 고적조사반에 의해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에 의해 신라 법흥왕·진흥왕 때 신라가 죽령을 넘어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요충지로 이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단양신라적성비에는 6세기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 고구려의 영토까지 세력을 확장한 사실 이외에 한강 상류 지역을 차지한 이후 시행 한 율령제도, 역역제도, 관등제 등을 통한 단양 지방에 대한 통치 방법 및 당시 사회상을 확인 할 수 있는 많은 내용 또한 담겨 있다.
바로 이곳 적성지방 출신의 `야이차'란 인물이 행한 공로를 기려 그의 처 등 가족들 및 그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포상하는 내용, 야이차가 하였던 행위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포상을 하겠다는 신라 중앙정부의 결정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또 이 내용 가운데 적성전사법(赤城佃舍法)·국법(國法) 등의 용어가 보이는데, 이는 법흥왕대 반포된 율령 및 신라의 북진과 관련하여 크게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1990년대 후반에 이곳 주변으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게 되면서 단양팔경휴게소가 건설되게 됨에 따라 긴급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단양적성과 연관이 깊은 단양 하방리 고분군이 일부 발굴조사되어 알려졌다.
이 하방리 고분군 4호분에서 출토된 고배(일단, 이단)·대부직구호·소호 등은 6세기 초·전엽의 신라의 매장의례를 보여주는 고고자료로서 신라의 6세기 단양일대 진출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신라가 북진하면서 만들어진 거점에는 보편적으로 그 조영주체와 연관이 있는 고분군이 존재하는데, 이 하방리 고분군은 신라의 적성 진출 당시의 단양지역 정치체의 존재와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고고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단양 하방리 고분군의 경우 중앙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일부 지역에 대한 조사에 그치고 있고, 아직 분포범위·현황파악 등 고분군 전체 지역에 대한 정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양적성과 단양신라적성비는 이미 그 중요도와 가치를 인정받았고 주변 경관과 함께 단양군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신라의 단양진출과 `야이차'로 대표되는 당시 단양 지역 정치체를 보다 생동감 있게 뒷받침 할 고고자료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단양적성이 위치한 곳은 단양호와 소백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기반으로 충청권·경상권·강원권의 관광연계망이 교차되는 지점으로서 여기에 신라의 북진과 당시 단양지역 정치체의 스토리텔링과 역사적 맥락이 살아 있는 고고자료가 더해진다면 더욱 풍성한 역사문화 관광자원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단양적성의 역사문화 컨텐츠를 보태어 줄 단양 하방리 고분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더 나아가 고고학적 학술조사를 통해 단양 하방리 고분군의 구체적인 실체가 밝혀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