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1925년생, 어머님은 1932년생으로 1948년 2월에 혼인하셨으니 결혼 70년을 훌쩍 넘기셨다. 아버님은 30여년전 1990년에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셨다. 이후 부산 해운대 아파트에 사시다가 5년여 전 장남인 형님이 마련한 청주 오송 아파트로 오시게 되었다.
오송에 오시게 된 계기는 당초 요양원 입주를 고려했으나, 요양원은 외롭다는 형수님의 제안으로 형님가족과 같은 아파트에 전세를 마련해 입주하신 것이다. 그리고 형님 내외는 당초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거주하였으나 부모님 사시는 같은 동 위층으로 이사까지 하였다. 동생들에게 일체 부담없이 아파트를 마련하셨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형님 내외는 `국이 식지 않는 거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 하시고 지내시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님내외, 아니 형수님이 너무 고맙다.
울산사는 누님이 종종 생선회, 해산물 등을 한보따리 챙겨 방문해서 함께 식사할 때면 자그마한 잔치가 된다. 일본사는 동생은 코로나 전에는 서울, 부산, 목포 등 한국 세미나에 오면 어김없이 방문하므로 또 다른 자그마한 잔치 분위기가 된다.
나도 뭐 좀 동참해야 할 것 같아 생각끝에 주말에 별일 없으면 집사람이 앞장서고 하여 함께 부모님 모시고 충남·북 오일장에 가는 일이 잦다.
1·6일은 증평이나 아우내 장에, 2·7일은 음성, 공주산성 시장에 또는 세종 대평리 장에, 3·8일은 신탄진이나 괴산 장에, 4·9일은 미원, 강경, 조치원 장에, 5·10일은 금왕, 진천장에 간다.
시골 오일장은 기다림과 활기가 있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흐뭇함이 있다.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등 구경거리에 살짝 설레기도 한다. 아버님은 붕어빵이나 황금 잉어빵을 추억처럼 찾으시고 어머니는 계절야채나 생선가게에서 뭘 사고 싶어 하신다. 오래 걷기가 불편하지만 목적없이 이리저리 어린 아이처럼 다니신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각 지역 장날에 추어탕, 돼지수육, 칼국수, 돼지갈비, 갈비탕 등 나름 맛집에서 맛나게 먹는다.
증평 장날에는 돼지갈비, 공주산성 장날에는 돼지수육과 칼국수, 금왕 장날에는 강황솥밥 추어탕, 미원 장날에는 올갱이국, 강경장날에는 젓갈정식이나 복어탕, 조치원 장날에는 회집, 신탄진 장날에는 부추칼국수나 생선회….
요즘은 많이 쇠약하여 걷는 힘이 부족하고 걷기를 힘들어 하시어 청주시내에 마스크 쓰고 음식점 투어 위주로 한다. 내가 운전하고 아내는 조수하고 자가용 타고 바람도 쐬면서 갈비탕, 돼지갈비, 낙지볶음, 우거지탕….
때로는 점심식사때 우거지탕을 테이크 아웃해 부모님집에서 어머님이 하신 밥과 맛나게 함께 먹기도 한다. 식사후 설거지는 아내 만류가 만만치 않으나 내가 신나게 깨끗이 꼼꼼하게 한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설거지라도 아내한테 맡기지 말고 내손으로 하고 싶으나 아내 만류가 만만찮아 못할 때가 많다. 이 또한 얼마동안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짠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나이 되도록 양부모 다 계시니 철이 언제나 들까 하는 생각도 하나 아직도 여러가지 걱정해 주시는 구순의 부모님이 모두 계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주변에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어진다.
나도 줄일 것 줄이고 늘릴 것 늘리고 아낄 것 아끼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은 부모님처럼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