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直指)'를 아십니까?
`직지(直指)'를 아십니까?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10.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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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미디어는 마사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 20세기의 철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저서 제목이다. 마사지(massage)는 주무른다는 뜻이 아니라 메시지(message), 곧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불어 표현이다. 위 제목은 미디어(형식, 매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저서에서 맥루한은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 매체, 도구가 내용(contents)을 결정한다는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처음으로 세상에 선포한다.

문화의 역사를 회고해보면 형식이나 매체에 따라 내용만이 아니라 사람의 사고방식도 달라진다. 문자가 없이 말로만 의사전달을 하던 시대가 있었으며 이 시기를 구술전통의 시기(era of orality)라고 한다. 소리로 의사전달을 하니 사람들의 생각이 직접적이며 구체적이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는 사람들이 외워서 전하던 시가(詩歌)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어를 하는 사람들이 읽는 걸 들어보면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의 랩과 거의 같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하니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문자가 발명되면 새로운 시대(era of literacy)가 열린다. 문자를 통해 시가(詩歌)를 글로 옮기게 되면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보게 된다. 얼굴을 맞대고 옮기지 않고 글로 전달할 수 있으니 혼자서 읽고 즐길 수 있다.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다양한 차이가 사라진다. 같은 글이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같은 내용으로 전달된다. 다양한 현실세계와 별도로 균일한 생각의 세계가 열린다. 구체적 현실과 독립된 추상적(개념적)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미디어의 변화는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미디어의 변화가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의 사례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이다. 금속활자는 글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필사(筆寫)에 의존하면 소량의 글(작품)을 생산하게 되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하게 된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소수의 귀족이나 인텔리들만이 문자를 읽고 쓰며 이를 통해 의사전달을 할 수 있었다. 곧 문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금속활자를 통해 글을 대량으로 찍어내면 글로 전달되는 지식은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귀족문화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대중문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통해 처음으로 인쇄한 책이 성서이다. 소수의 성직자만이 아니라 대중이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바티칸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성서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날 수 있게 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대신에 직지(直指)를 대입시켜보면 어떨까?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든 이유와 직지(直指)를 찍기 위해 금속활자를 만든 이유는 다르지 않다. 대량 출판을 통해서 불교 서적을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나 직지는 민주적인 발상을 갖고 있다. 금속활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최첨단이다. 미디어를 통한 혁신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직지 제작자는 혁명적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직지는 엄청난 파괴력, 파급력, 영향력을 가진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다.

직지는 구텐베르크처럼 문화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혁명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하나의 문화재로 잠자고 있었다. 그것도 머나먼 타국의 도서관에서. 우리는 지역의 자랑인 직지의 문화사적인 가치를 알고 있을까? 선조의 탁견을 후손이 살려내지 못하고 있으니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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