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을 받는 소설가 김훈은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것으로도 남다르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자전거 레이서'라고도 덧붙인 적이 있기도 합니다.
40대 이후부터 20여 년이 넘게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누빈 그에게 걸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값 비싼 승용차를 자기 몸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세태를 꾸짖는 회초리 같은 발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도 들었지요.
자전거 레이서 김훈에 비하기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노릇이지만, 토요일 아침밥을 먹고 나선 한참을 놀고 있던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선 게 그간 여러 번이었습니다.
페달을 밟는 코스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벚나무와 살구나무가 뒤섞여 있는 가로수 길을 따라 실개천을 끼고 자전거 바퀴를 굴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혹 샛길로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오래된 전통시장 인근의 커피집에 들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서 송골송골 맺혔던 이마의 땀을 식혔던 거죠.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벽면을 꾸민 커피집 주인장은 몸에 밴 친절로 손님에게 환대를 해서, 다음에 또 가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만들더군요.
어느 정도 코스를 정해 자전거를 타다 보니 콧노래도 흥흥거리는 여유를 느끼게 되었고, 루틴(routine)이란 것도 생겨났지요. 토요일의 `바이킹(biking, 자전거 타기)'이 일상적인 일처럼 여겨진 겁니다.
특별하고 어려운 일보다는 일상적이면서도 손쉬운 일로 만들어지는 삶의 근육이 더욱 많이 단단해질수록 무언가를 견디어내는 힘이 세지지 않을까요.
어떤 면에선 자전거를 타는 제 모습이 남의 이목을 끄는 쪽 같아서 재미가 쏠쏠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앞바퀴 위쪽에 장바구니가 달려 있는 자전거를 타는 영락없는 아저씨가 눈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슬쩍이라도 눈길을 주지 않을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했으니까요.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에 장바구니를 떼어내고 탈까 하는 유혹과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끝내 자전거의 원형을 지켜낸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리의 어느 행상이 봉지에 차곡차곡 담아 내놓은 여름 과일들을 값을 치르고 데려올 때면, 장바구니는 의기양양해지고 페달을 밟는 발은 덩실덩실 신이 나기도 했으니까요.
자전거의 이름을 `풍륜(風輪)'이라 짓고 탔던 김훈이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라고 했던 말의 뜻을 곰곰이 되새겨봅니다.
때론 힘에 부친 적도 있었지만, 자전거와 함께 만들어가는 동력엔 거짓이 없더군요. 저도 자전거에다 따로 이름을 지어줄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