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은 인생의 스승이다
나쁜 놈은 인생의 스승이다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5.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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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분노를 유발시키는 나쁜 놈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고민을 나만 했을까? 아니다. 인류의 스승들이 그런 고민을 했으며 명쾌하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소크라테스는`너 자신을 알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건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겸허하게 살라는 말이다. 알량한 지식을 갖고 잘난 척하고 살지 말라는 말이다. 스스로의 지혜가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되면 스스로 내세울 것이 없게 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울 일이 없다.
나쁜 놈이 싸움을 걸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싸우는 순간 싸움을 걸어오는 나쁜 놈과 같아진다. 이기면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지면 힘이 없는 자가 된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악행으로 되갚지 말라고 말한다. 상대가 나에게 한 행위를 악하다고 평가하면서 똑같이 행동하면 나도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한(악행을 가한) 아테네 시민에게 탈옥이라는 악행을 범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명쾌하다. 그렇지만 범인(凡人)으로서는 어려운 해결책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이 현실세계에서의 생존의 논리인데, 나쁜 놈과 싸우지 말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대라고 한다. 또 누군가가 너의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말한다. 평범한 인간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악행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는 말이다.
예수는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근본적인 데까지 파고들어가서 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외쳤다. 자신에게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원망하거나 욕설을 퍼붓기보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방식으로 대처한 것이다. 앙갚음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해결책이다.
큰 스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칭찬한다고 좋아하지 말고 비난한다고 화를 내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화를 내는 건 나다. 다른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이 없을 때 내가 화를 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한 것이다. 그 사람이 없음에도 나는 화를 낸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화를 내는 건 내 안에 분노를 유발시키는 불씨가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나도 그 사람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정말 나쁜 놈이 있어서 보기만 하면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정말 나쁜 놈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스님께 물었다. 그랬더니 그놈을 부처라고 생각하라고 하신다. 스스로가 이미 완성된 인격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큰 병폐인데 그놈만 보면 치미는 화를 보면서 아직도 공부가 멀었다는 자각을 갖게 해주니 그 사람은 정말 고마운 스승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쁜 놈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원수 같은 자식이다. 부부나 자식은 전생의 원수였던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미는 인간에게 잘해줘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왜냐고? 화가 치밀어 원수로 생각하면 그 사람과 내생에 부부나 자식의 인연을 맺게 되니까.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까? 그러니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수를 사랑하자. 화가 나더라도 참고(忍辱) 나쁜 놈을 스승으로 삼아 잘해주자.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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