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아침, 쥐방울만 한 새들의 지저귐과 푸덕거림에 잠에서 깬다. 서쪽으로 난 커다란 창 커튼을 걷는다. 가로등이 퇴근할 시간이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몇몇 조바심 난 새들은 바닥에 내려앉아 안절부절못한다. 넓은 돌판 우묵한 곳에 물이 고여있다. 냉수 목욕이다. 몸을 담그자마자 바로 나온다. 밤새 온도가 내려갔으니 냉수욕하기엔 무리가 있을 터 날갯짓으로 물을 털어낸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다. 기다리다 지친 새는 들어가 같이 목욕한다. 목욕탕이 비좁다. 바로 옆, 감나무 아래는 주먹만 한 구덩이가 여럿 만들어졌다. 물 목욕을 한 녀석인지는 모르겠으나 몇몇 작은 새들이 무리 지어 모래 목욕을 하고 있다. 공중목욕탕과 노천모래탕을 번갈아 가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목욕을 마치고 털 고르기를 하는 녀석들한테 물도 튀기고 모래도 튀기고, 끝날 줄 모르는 목욕 시간이다. 비둘기가 물을 마시러 왔다.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구~욱, 국, 구~우, 구~우”
토요일 오전, 해가 서재 깊숙이 들었다. 겨우내 햇살이 부족한 작은 선인장들에 햇살이 손을 내민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브제 역할을 하는 책에, 일렬로 늘어선 30여개의 선인장에 빛이 머문다. 무수히 많은 가시가 햇살이 되었다. 책을 펼치고 선인장을 보며 등에 햇살을 모은다. 참 따습다. 봐야 하는데 눈이 감긴다.
토요일 오후, 제법 온도가 올라간 듯하다. 몇 개의 전구가 더 켜졌다. 진공관 예열이 제법 된 듯, 이제 최상의 상태를 보여줄 기세다. 합세다. 정신없이 발자국을 남긴다. 방에서, 욕실에서, 거실에서 시작해 옥상으로, 2층으로 여기저기 헤집고 다닌다. 걸레질하며 우물을 연신 길어 올린다. 물이 시원하다. 마시고 싶은 우물이다. 빨아야 하는 걸레는 제쳐두고, 이유 없이 팔꿈치까지 적신다. 그러는 사이 토요일 밤이 되었다. 낮 동안 마무리 못 한 일을 거실로 가지고 들어와 움직인다. 한시도 가만히 있으면 몸에 곰팡이가 날듯하다. 잠든 사이 꿈에서도 일한다.
일요일 새벽, 동이 트기 전 눈이 떠져 있다. 머릿속은 맑다. 속전속결 옷을 입었다. 새들보다 먼저 움직인다. 가로등은 아직 열일 중이다. 우물 뚜껑을 여니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동녘 산등성이 맞닿은 공기의 색은 푸르스름한 잘 빻은 파스텔 가루다. 오전 오후의 구분이 없다. 평일 거른 적 없는, 숙취가 심해도 챙겨 먹던 아침을 거른다. 점심은 밥 한 숟가락 김치콩나물국에 말아 대충 때운다. 수선화, 상사화, 히아신스, 튤립 싹이 잠망경 윗부분같이 삐죽 내밀었다. 아직 추위가 남았다는 소식을 접한지라 걷어내던 나뭇잎을 살포시 덮는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는지 모른다. 160여 평 땅, 텃밭에서, 샘에서, 1층에서 2층을 거쳐 옥상까지, 온실을 들락거리며, 온종일 멈춤이 없다. 발걸음이 멈췄는가 싶으면, 손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발의 동력이 손으로 전달됐다. 벨트가 연신 돌아간다. 해가 멈춰주면 좋으련만 멈추지 않는 모터를 가졌다. 일요일은 석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서쪽 아파트 옥상에 해가 걸리면서 더 분주해진다. 이제 물드는 시간이다. 색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요일의 해는 분초를 다툰다. 온종일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싶은 해는 잠시 한눈파는 사이 자취를 감춘다. 낭패다. 아직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야속하다. 내려가는 해를 붙잡아 둘 힘이 없으니, 눈은 해를 보고 손과 발을 여전히 돌아간다. RPM이 최고치를 찍는다. 결국, 명도와 채도는 제로가 되었다. 검은 무채색이 되었다. 가로등이 위로한답시고 삐죽 웃어준다. 그러든 말든, 이제 장갑을 벗을 시간인가? 아니다. 거실로 가지고 든다. 뭐 그리 할 일이 많은지, 끝이 없는 일이다.
하이볼 한잔에 잘 차려진 저녁 자리다. ‘파인다이닝’, 오마카세お任せ에 진으로 만든 하이볼이 하루의 마무리다. 토요일보다 더 짧은, 일주일 중에 가장 짧은 시간, 가장 많은 움직임이 있었던 일요일의 시간이다.
이런 그러고 보니 내일이 월요일이다. 글을 써야 하고 토요일, 일요일을 기다리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