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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해야 할 일 때문에 취미를 미루는 삶을 현생이라고 한다. 반면에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으로 신(God)과 같이 완벽한 인생을 갓생이라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community)를 참고하자면, 하루에 두 시간쯤의 아침 산책과 여덟 시간이 넘는 공부와 저녁 목욕과 영화 한 편의 감상이 들어간다면 갓생이라는 얘기가 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일’, ‘영화 한 편의 감상’을 ‘취미’로 대체해 받아들이면, 갓생에 관한 이해가 수월해질 것이다.
별다른 여가생활도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먹고사는 일로 마지못해 견디고 있는 게 현재의 인생, 즉 현생이란 생각마저 든다. 현생 살기에 바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리라.
갓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를 먼저 돌아보야 할 법하다. 내가 들고픈 세 가지 사례가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개인의 취향과 방법론이란 것도 있으니까.
단원(檀園)이 그린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의 화제(畵題)가 ‘지창토벽종신(紙窓土壁終身) 포의소영기중(布衣嘯詠其中)’으로 “종이 창문과 흙벽 속에서 평생 동안 벼슬 없이 시를 읊으며 살리라”였다.
아파트를 빈틈없이 채운 수 만 권이 넘는 널브러진 책들 속에 파묻혀 하루에 여덟 시간씩 독서와 집필을 한다는 어느 퇴직 평론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유행을 따라 작성해 놓은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마치 도장 깨기라도 하듯 전투적으로 지워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단 하루만이라도 나만의 갓생을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며칠만이라도 갓생을 살 수 있다면, 나머지를 현생으로 바쳐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현생의 삶이 계속된다 해도 마음이 찌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생이 자신의 실제 삶, 혹은 지금 해야 할 일, 다시 말해서 자신의 본분을 뜻한다면, 현생이 곧 혐생(嫌生)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현생과 갓생이 무난하게 합쳐진 하이브리드(hybrid)를 추구하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