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바람에 코끝이 시큰거리는 이맘때면 종종 들리는 안부 인사가 있다. 그건 바로 “김장은 하셨어요?”
요즘엔 계절 상관없이 다양한 채소를 맛볼 수 있고, 편의점만 가도 완제품 김치가 넘쳐나기에 김장하지 않는 집들이 많아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이때쯤이면 꼭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김장을 준비한다.
필자의 어머니 역시 그러하다. 몇 해 전 어머니 건강 문제로 김장을 못 한 때가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보내준 김치 덕에 오히려 김치냉장고는 넘쳐났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입에 딱 맞는 김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다음 해에 어머니는 자식들이 말릴 새도 없이 김장을 준비하셨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건강 탓에 절임 배추를 사는 것으로 타협해서 말이다.
과거에는 김장을 준비하려면 한꺼번에 큰 비용이 들어가야 했기에 가장들의 근심거리였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로 가장들의 고민거리였던 김장이 산업화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어느새 주부들의 무거운 숙제가 되어온 것이다.
가정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김치를 담그는 법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전부 다른 개성을 뽐내며 매년 많은 가정에서 김장을 이어왔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김치와 김장 문화'가 등재되었고, 2017년에는 `김치담그기'가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매일 먹는 반찬 `김치'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다니! 새삼 놀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치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전통 지식과 지혜가 오롯이 담겨있고, 공동체 간 나눔, 화합의 정신까지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와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 곳곳에서 더욱 퍼져가며 실제 김치를 담가 먹는 외국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실상은 조금 아쉽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는 김치의 소비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성과 원조를 내세우지만, 저렴한 가격에 밀려 학교 급식이나 식당에서는 중국산 김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몇 년 전부터 중국은 이른바 `김치 공정'을 벌이며 시끄럽게 하고 있다. 김치의 기원을 `파오차이'로 보고, 우리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표기하는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디서 유래했는지보다는, 얼마나 독자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김치와 파오차이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파오차이는 부패를 막기 위해 각종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방식으로, 그대로 먹을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다시 조리해서 먹어야 한다. 반면 김치는 발효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별도의 조리 없이도 바로 먹을 수 있다. 단순 절임이 아니라 젓갈 같은 동물성 발효식품과 양념을 잘 버무려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그야말로 `발효 과학'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음식인 것이다.
국가 무형유산 `김치담그기'는 전승자가 없는 공동체 종목인데다, 김치 소비량이 계속 줄어들어 점점 김장을 하지 않게 되는 이 상황은 조금 걱정스럽다. 우리의 김장 문화를 지속해 나가기 위한 방안이 없을까?
다행히 여러 지자체에서 김장 축제를 개최한 것이 하나의 대안일 수도 있겠다. 해마다 신청자를 모집해 김장을 하는 행사인데, 가정에서 하기 힘든 김장을 다 같이 한자리에서 끝내니 얼마나 편하고, 즐거운가. 지역 농산물의 판로 확장을 위한 노력으로 시작했겠지만, 여럿이 함께할 때 빛나는 우리의 김장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행사이다.
해마다 김장하는 날이면 `얼른 해치우고 쉬어야지'하는 마음만 굴뚝같았는데, 올해는 가족이 둘러앉아 김장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볼까 한다. 우리 집의 김치담그기 문화를 기록해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해 놓은 것만큼 더 뿌듯한 날이 되지 않을까.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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