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대표 꽃 국화의 계절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알로록달로록 색도 다양하다. 아파트 화단에는 앙증맞은 노란 소국이 피었다. 경비 아저씨가 정성 들여 가꾼 덕에 깔밋하기 그지없다.
시에서 조성해 놓은 동네 공원에는 보랏빛 아스타국화가 신비스럽다. 일주일에 서너 번 걷기 운동을 하는 들길에는 야생의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모닥모닥 피고 있다. 하얀색 구절초와 연보라 쑥부쟁이는 하늘하늘 청순미로 시선을 잡아끈다.
70여 종이나 된다는 국화꽃 중에서 내가 유독 좋아하는 꽃은 야산 비탈에 흐드러진 노란 감국이다. 야생의 꽃들은 군락으로 무리 지어 피어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사람의 손이 간 꽃들보다 향기도 훨씬 진하고 수수해서 좋다. 감국이 흐드러질 무렵에는 할 일도 없으면서 비탈진 들길을 배회하곤 한다. 간들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들숨에 폐부 깊숙이 퍼져오는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면 지천으로 핀 감국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엔 개발이다 뭐다 대부분 시멘트 포장이 되어서 지천으로 핀 감국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졌다. 유일한 나의 가을 낭만도 시나브로 사위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어머니는 문마다 창호지를 새로 바르셨다. 문을 떼어 봉당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구멍이 나고 누래진 창호지를 떼어내고 넓적한 붓으로 풀을 발라가며 새 창호지를 붙이셨다. 손이 많이 타는 문고리 부근에는 국화꽃과 은행잎으로 무늬를 앉혀 창호지를 덧발랐다. 그렇게 하면 예쁘기도 하거니와 방문을 여닫느라 문고리를 자주 당겨도 쉽게 찢어지거나 닳지 않고 오래 갔다.
아버지의 자개 공장에서 일하는 언니 오빠들의 끼니까지 해대느라 경황이 없는 중에도 창호문에 꽃잎과 단풍잎으로 예쁘게 장식하는 것은 엄마만의 멋이고 낭만이었지 싶다.
엄마의 낭만은 방문에 멋을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해 가을에는 집에서 가까운 산밑의 들길에서 노란 감국을 커다란 바구니 가득 따오셨다. 그늘에 잘 말려서 베개 속을 넣으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이웃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가장인 아버지의 베개 속을 노란 감국으로 채워 감국 베개를 만들어 드리고 싶으셨던 것이다. 요즘처럼 뭐든 풍족한 시절이 아니었던 1970년대에는 베개 속을 벼의 껍질인 왕겨로 속통을 채운 베개가 많았다. 광목으로 만든 속통에 왕겨를 채우고 옥양목이나 포플린천에 십자수를 놓은 베갯잇을 씌웠다. 아기들 베개는 좁쌀을 넣기도 하고 잘사는 집에서는 메밀로 속을 채운 베개를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서민 가정에서는 왕겨 베개를 썼다. 까끌까끌 촉감도 좋지 않은 왕겨 베개보다 꽃으로 속을 넣어 만든 베개라니 생각만 해도 향기롭고 포근했다. 철이 없던 나는 내 베개도 꽃으로 넣어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엄마가 정성으로 만들었던 감국 베개를 아버지는 몇 번 베지도 않고 밀쳐놓으셨다. 왕겨가 들어간 예전의 익숙한 베개를 고집하셨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엄마의 정성을 생각해서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 주시지! 우리 아버지는 왜 그렇게 멋이 없고 가부장적이셨는지 엄마가 두고두고 서운해하셨던 일이 아직도 생각난다.
창호지를 바른 문에 꽃잎으로 멋을 낼 일도 감국을 말려 베개 속을 채울 일도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 베개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산다.
국화꽃이 만발하는 이맘때쯤에야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헤어날 수 없는 그리움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