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친인척이나 수석비서관 이상 측근 비위를 감찰하는 직책이다. 2015년 `특별감찰관법'에 따라 설치됐다. 국회가 후보 3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 때 대통령 측근 비리를 캐낼 기관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2015년 3월 검사 출신 이석수 변호사가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당시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히던 우병우 민정수석의 군 복무 중인 아들의 보직 특혜와 가족회사 탈세 의혹 등을 감찰하며 존재를 알렸다. 지청에 함께 근무했던 인연으로 호형호제 하던 동료에게 칼을 겨누는 소신을 보였으나 바로 청와대 압력에 직면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감찰 내용을 기자와 공유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터지며 역공을 당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고발 당했고, 청와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의혹만으로 물러날 수 없다”며 버티다 압수수색까지 받게되자 사표를 냈다.
1년 6개월 만에 물러났지만 그는 나름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 수석의 감찰을 마무리 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을 내사한 후 검찰에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최순실이 이사장을 맡던 미르·K스포츠 재단에 수백억원대 기부금을 내도록 기업을 종용한 정책기획수석을 내사해 대통령 탄핵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의 활약은 역설적으로 특별감찰관 장기 공석을 낳는 단초도 됐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갓 출범한 공수처와 업무가 중복된다는 핑계를 댔지만 속내를 모를 국민은 없다.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대통령도 도긴개긴이다. 국회에서 합의하면 받겠다는 입장이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주변에서 잡음이 터지는 마당에 곁에 감시꾼까지 두고픈 생각은 없을 터이다. 그 의중을 모를리 없는 여당에서 특별감찰관은 이젠 금기어가 됐다.
그 금기어를 놓고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당장 추진하자는 한동훈 대표와 미온적인 추경호 원내대표가 역할 다툼을 하며 내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추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소관이니 의원총회를 열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고 한 대표는 “원내든 원외든 당을 총괄하는 게 대표의 권한”이라며 서두르자는 입장이다.
특별감찰관을 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연계 추진한다는 게 국민의힘의 현 방침이다. 민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하면 특별감찰관 추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선 공약을 차마 부정할 수 없어 구실을 달았지만, 두 기관은 업무적 연관성이 전무해 한데 엮어 처리할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자당의 공약 실천 여부를 타당의 결정에 의지하는 모양새도 구차하기 짝이 없다.
한 대표는 재보선에서 선전한 여세를 몰아 용산을 밀어붙이려다 푸대접 작전에 말려 입지를 구겼다. 반격을 통해 여론에 어필할 성과를 얻어내야 할 절실한 처지다. 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상관없이 특별감찰관을 추진하자는 게 그가 빼든 반전 카드다. 정치적 계산이 엿보이지만 특검을 받지못하겠다면 차선책이라도 동원하자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내 다수를 장악한 친윤 세력이 한 대표가 딛고오를 발판를 만들어줄 리 없다. 결과가 뻔한 의원총회를 고집하는 이유다.
한 대표 세력은 배수진을 쳤고, 대통령과 친윤 역시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인다. 대표 반대를 묵살하고 원내 대표가 주도하는 항명성 의원총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의총이 열리는 순간 국민의힘은 헤어나기 어려운 격랑에 빠져들 공산이 높다. 당 대표를 배제한 의원총회는 결과와 상관없이 당이 갈라져 한쪽이 보따리를 싸는 결별과 공멸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여당으로선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10%대 추락을 앞둘 정도로 비상한 시점이다. 응답자들은 대통령 부정평가 1차 사유로 김건희 여사 의혹을 꼽는다. 의총을 열어 특별감찰관 임명을 결의해도 모자랄 판에 추 원내대표가 열겠다는 의총은 그 반대로 갈 것 같다. 국민의힘이 이런 의총을 연다면 `봉숭아학당'이라는 조소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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