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이 승자가 되려면
의협이 승자가 되려면
  • 권혁두 국장
  • 승인 2024.09.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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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며 시작된 의료대란이 8개월째로 접어든다. 사태가 길어지며 병원이 의사가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국민이 감수해야 할 일상이 돼가고 있다. 경향신문이 의정충돌 이후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응급실 뺑뺑이 사례 34건을 분석한 결과 환자 13명은 결국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응급환자들은 평균 14.7회 이송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14곳 이상의 응급실을 전전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쳐 목숨을 잃은 사례가 적지않을 터이다.

하지만 국민의 죽음이 방관되는 전대미문의 참극을 야기한 주체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실은 `내년도 증원 불가피'에서, 의사단체는 `내년도 증원 백지화'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강행 의지에 갇혀 굴신을 못하는 모습이다. 김건희 여사의 의혹 시리즈 방어에 힘을 쏟느라 의료사태에 기울일 여력도 없어 보인다. 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거듭 독대를 요청하고 거절당하는 웃지못할 촌극은 방향타를 상실한 여권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의정의 벼랑끝 대치 상황에서 공감할 만한 중재안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 역시 사태를 방기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제 국회에선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연임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상대를 `사기꾼'으로 부르며 충돌했다. 한때 물살을 탈 것처럼 보였던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은 갈수록 난망해지는 분위기다. 촌각을 다퉈야할 위중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가기관의 자리 하나 놓고 악다구니를 벌이는 국회를 보면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 국민은 국민의 생명을 정쟁보다 후순위로 미룬 정부와 국회에 좌절하고 있다. 그 좌절감은 사태 해결의 키를 쥔 의사단체의 아집과 오만앞에서 더 깊어진다.

얼마전 의사협회 부회장은 SNS에서 간호사들을 모독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병원의 의료업무룰 돕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합법화하는 간호법 제정안이 공포되자 간호사들을 향해 화풀이를 한 것이다. 그는 간호사들을 `건방진 것들', `플레이어인 줄 착각하는 장기 말' 등으로 조롱했다. “불법 무면허 의료 행위가 만연하고 의료 현장이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는 의협 회장의 반박 논리는 부회장의 막말에 묻혀버렸다.

의사·의대생 커뮤니티에 “우리는 국민들이 죽으라고 눕는 거다”, “매일 1000명씩 죽어나갔으면 좋겠다” 등의 끔찍한 글들이 올라와 국민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의료 현장을 사수하는 의사들을 부역자로 낙인찍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리스트를 만든 전공의가 구속되자 의료계 일각에선 그를 옹호·후원하고 있다. `사법 농단에 희생된 잔다르크'라는 찬사까지 등장하며 “돈벼락을 맞게하자”는 모금운동이 진행되는 중이다.

소수의 일탈도 거듭되면 집단의 행태로 매도되기 마련이다. 의대 증원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센데도 의료계의 증원불가 주장에 여론이 기울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의사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도 올라왔다. “의사들이 일을 안 할수록 상대적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왜냐하면 의사는 검사·변호사 따위와는 달리 필수적이고 대체 불가니까”. 이 일그러진 선민의식 앞에서는 `국민의 생명을 대체불가 필수 인력에 맡겨야 한다면 그 자원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힘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미 2025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가 끝나 전형에 들어간 상태다. 정원의 67.6%(3118명)를 수시로 뽑는 전국 39개 의과대학도 되돌리기 어려운 일정에 돌입했다.

의협의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 주장이 억지로 치부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협의체에 참여해 고립무원에 놓인 국민을 보듬는 진정한 승자가 되기를 의협에 간절히 바란다.

현실적으로 국민이 기댈 곳은 의사들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에 하는 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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