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웠던 여름날 에어컨을 틀며 손꼽아 기다리던 가을이다. 기후 변화의 여파로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국지성 비로 인해 수해 걱정을 많이 했던 여름이었다. 요즘 하늘은 더 푸르러지고, 나무의 초록색 잎은 한여름에 보던 초록색이 아닌 노랗고 붉은색을 조금씩 띠고 있다. 저녁이면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자면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보들보들 연두색 잎이 돋아나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 참외, 수박, 얼음물 그리고 에어컨으로 더위를 피하고 싶은 여름. 더위, 장마, 태풍의 시간을 보낸 후 결실의 가을. 눈사람을 만든 후 폭신한 눈 위에 누워 흩날리는 눈을 볼 수 있는 겨울. 사계절 중 기대되지 않는 계절이 있을까마는 가을은 수확의 즐거움이 있어 더 기다려진다. 아삭아삭 새콤달콤 맛있는 사과, 하얀 과육에 단물이 많아 저녁 식사 후 한 조각이면 만족스러운 배. 깜깜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내려온 듯한 검푸른 포도, 오독오독 달큰한 맛이 나는 밤과 아작아작 몸이 건강해지는 대추. 그리고 호호 불어가며 먹는 군고구마까지.
가을에 친정을 가면 주위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진다. 우리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떨어진 밤을 줍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밤 줍는 재미에 모기에게 뜯기는 줄도 모르고 낙엽 사이에 떨어져 반짝이는 밤을 주워 날밤으로도 먹고, 쪄 먹기도 하면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또 고구마 수확은 어떤가? 초록색의 무성한 줄기를 걷어내며 고구마 캐는 일은 힘들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다. 줄기가 있던 자리를 살살 캐 내려가면 대여섯 개의 고구마가 하나의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아 `一石二鳥'인데, 하물며 한꺼번에 여러 개의 고구마를 캘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고구마를 잘 캐기 위해서는 고구마 주변의 흙을 살살 긁어가며 캐야 길쭉하거나 둥근 고구마를 호미 자국 없이 캘 수 있다. 앞에 보이는 고구마만 보고 호미질하거나,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굵고 튼실한 고구마에 호미 자국이 나거나, `뚝'하고 부러져 상품성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고구마에 호미 자국이 나거나 부러졌다고 해서 상심하지 않아도 된다. 상품성이 없는 고구마는 농사짓는 사람들끼리 나눠 먹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요즘 시골에는 멧돼지가 출몰한다. 고구마가 굵어지는 8월부터 밭을 드나들며 고구마를 파먹었다. 친정에서 호박고구마와 꿀고구마를 심었는데 호박고구마를 먼저 다 먹은 후 꿀고구마도 먹기 시작했는데 먹다 남은 조각이 실한 것을 보면 땅속에 있는 굵고 맛있는 고구마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멧돼지가 고구마를 다 먹을까 서둘러 고구마를 캔 날에는 저녁 먹을 생각에 즐겁게 내려온 멧돼지가 빈 고구마밭을 보고 당황할 모습을 상상하니 싱긋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추운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멧돼지가 저녁도 먹지 못하고 힘없이 터덜터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가을은 소리로도 온다. 귀뚜라미는 부지런하게도 계절을 알린다. 여름 내내 울어대던 매미와 계주를 하듯이 낮에는 매미가, 저녁에는 귀뚜라미가 운다. 운동을 끝내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는 하루를 정리하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다.
낮에는 아직 햇볕이 기승을 부려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명한 하늘과 조금씩 색이 변하고 있는 나뭇잎, 잦아드는 매미 소리와 저녁이면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서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렇게 가을은 우리에게 오고 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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