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삼켜버린 우리 유산
무더위가 삼켜버린 우리 유산
  • 오승희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 연구원
  • 승인 2024.09.29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승희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 연구원

시험 성적표를 받듯, 우편함에서 관리비 고지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예상대로 전기요금이 지난달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요금 상승만이 문제가 아니다. 장기간의 폭염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냈다. 올해 가뭄으로 인해 농업 부분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고, 그 여파로 농작물 가격이 급등했다. 또, 폭염 속에서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쓰러지고, 가축들이 폐사하는 등 폭염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환경문제는 국가유산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7월 한국 각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인해 최소 23건의 국가유산이 손상되었으며, 특히 서울의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 중이던 한양도성 성벽 일부가 무너지기까지 했다. 작년 우리 지역에서는 청주의 안심사 대웅전 경사면이 유실되고, 정북동 토성 주변 배수로가 침수되어 토사가 유실되는 피해도 발생했다. 이처럼 우리의 소중한 국가유산이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대대로 이어온 무형유산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에 민감한 농업 기반의 무형유산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에치기다.

누에사육은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다. 누에를 건강하게 기르고 고품질의 고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후와 섬세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온난화로 인해 폭염이 길어지고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누에사육에 큰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작년 경북에서는 8~9월 과도한 습도로 인하여 작황 부진으로 고치 생산량이 감소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갑작스러운 고온 현상은 누에의 생애 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성장에 악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농가들은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많은 농가들이 누에사육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누에치기가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낸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로, 이를 잃게 된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도 함께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누에치기는 단순한 사육 기술이 아니라, 뽕나무 재배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자연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적응하며 발전 시켜온 소중한 유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이 기후 변화로 인해 점점 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자연재해와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그 전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농가들은 오랜 세월 누에치기를 지키기 위해 힘써왔지만, 급격하게 변해가는 기후 상황에 기존의 관리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지면서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러한 위기를 인지하고 2023년 국가유산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을 수립해 자연재해로부터 국가유산을 보호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후변화 예측 및 대응 체계를 통해 국가유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을 기반으로 우리 지역에서도 기술적 연구 개발과 농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국가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상기후와 같은 환경문제들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모두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