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고구마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4.09.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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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하루 세끼 모두를 고구마를 먹으며 살았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에 어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밥상에 올려 식구들 앞에 내놓으시면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배고픔을 해결했다.

한입에 넣어도 될 정도로 작으마하게 생긴 그것을 사람들은 밤고구마라고 불렀다. 겉은 빠알간 색이면서 속은 밤과 똑같이 닮은 분 (씹을 수록 고소하고 단맛) 이 난다고 하여 이름을 붙였을 것 같다.

9월하순이 되면 수확하여 이듬해 봄까지 먹는 고구마는 우리집은 물론 이웃집에서도 주식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흐르늪은 5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으나, 우리집은 물론 많은 가정에서 식량이 없어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땅에 군사정부가 들어선지 해가 두번 바뀌었을 때다. 이 해 가을부터 그 어려움을 해결해준 것이 고구마였다. 쌀이 없어 늘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절 아버지와 형님은 마을앞을 흐르는 남한강변에서 자갈들을 걷어내고, 리어커로 흙을 실어다 펴서 밭으로 만들고 고구마를 심었다.

워낙 가난하여 비료등 고구마가 잘 자라게 할 그 어떤 것도 준비하여 줄 것은 없었으나 강물을 퍼다 뿌려주는 것만큼은 낮이고 밤이고 온 정성을 기울였다. 지금같이 크고 잘 생긴 고구마는 안되었어도 식량으로서, 사람들의 몸에, 그리고 삶에 활력소를 주는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고구마는 길고 긴 겨울에도 집안의 큰 재산이나 다름없었으니, 집집마다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통가리를 방에 들여놓고 고구마를 가득 담아 끼니때는 익혀서 먹고, 평상시와 밤에 날것으로 그 맛을 즐기는 것에 만족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다 보니 배설하는 것도 고구마뿐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식량을 해결하는 것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아무 것도 심을 수 없어 버려두고 있었던 땅의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자갈로 뒤덮여 황폐해진 곳에 땅을 일구어 어엿한 밭으로 만들고 고구마농사를 지어온지 삼년정도가 되자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시며 허공에 눈을 주시는 아버지에, 말이 없으신 어머니가 한나절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다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해서야 돌아오시더니 밤이 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가 형님과 함께 리어커에 삽과 괭이, 삼태기를 싣고 나가시길래 호기심을 갖고 따라가 보니 지난번의 고구마를 심었던 밭을 지나 더 아래쪽 강가에서 크고 작은 돌들을 파내어 리어커에 싣고 있었다. 그 돌을 일정한 곳에 버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래흙을 실어와 돌을 걷어낸 자리에 쏟아부었다. 며칠이 지나자 제법 그럴듯 한 밭이 눈앞에 펼쳐졌고, 어제의 고구마밭이 아닌 새로운 밭에서 고구마는 더욱 힘차게 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밭도 삼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타난 밭주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오랜 세월동안 버려진 곳이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어엿한 밭이 되자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거나 다름 없었다. 다소 황당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어차피 내것이 아닌 다음에야 피땀흘려 정성을 다해 가꾸고 다듬어온 고구마밭을 내어주는 것외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한동안 지은 고구마로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한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삭이고 말았다.

지금 그곳에는 고구마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없다. 충주호 조정지댐이 만들어져 모두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이제 마을은 오십여년전의 마을에서 줄어들어 사라져가고 불과 이십여호도 안되는 작은 마을로 남았으며, 당시의 사람돌도 생을 달리 하는등 세월의 아쉬움만 안겨주고 있다.

오늘날 고구마는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궁핍했던 그 시절은 쌀보다도 더 귀중한 양식이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와 형님이 그립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생 고생하시면서 밭을 만들어, 고구마를 심고, 즐겨 수확하여 철없는 자식을 사랑으로 키워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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