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통해 나를 보다
나를 통해 나를 보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4.09.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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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 보면 어린이 서가가 아닌 일반도서 서가에 그림책이 꽂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회차(2024.8.22.) 중에 소개했던 그림책 <어른/작사 서동성·이치훈/그림 곽수진/언제나북스>이 그렇고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곤살로 모우레/북극곰> 또한 그러하다. 글과 그림이 선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주제와 이야기 흐름의 난이도에 따라 분류했기 때문인 듯하다. 간혹 일반도서 서가에 들러 특별한 목적 없이 쓰윽 둘러보는 이유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책 <도시 악어/글라인·이화진 글/루리 그림/요요> 또한 그리하다 내게 온 그림책이다. 일반도서 서가에서 그림책을 만난 반가움과 도시에 사는 실제 악어 이야기는 아닐 터이지 싶은, 제목이 주는 호기심이 더해 뽑아 든 그림책이다. 물론 그렇다. 악어에 빗댄 우리 어른들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잊고 사는 우리 이야기 말이다.

`나는 악어야. 도시에 사는 악어.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의 살아있는 것들이 그렇지 않은가?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 나에게 맞는 직업과 직장 찾기 또한 어렵지 않던가! 그렇기에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지.'라는 악어의 읊조림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디 그뿐이던가.

그 무리에서 외면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 또한 얼마나 치열한가. `첫인상이 모든 걸 좌우 한다.'는 어설픈 통념을 알고 있기에 첫인상에서 튀지 않으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들이는 공과 시간 만만치 않다. 물론 악어도 그리한다. 피부 관리를 받고, 위협적이고 거부감이 든다는 이유로 악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도 자르고 갈아 뭉툭하게 만든다.

여기까진 악어도 한다. 그들과 섞이며 그들에게 스며들어 살고 싶기에 그리한다. 그런데 꼬리마저 자르라 권한다. 꼬리를 부여안고 거울 속의 있는 자신을 본다. 눈에서 물을 흘리며 처연하게 꼬리를 본다. 악어의 장점이 치명적 약점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악어에게는 신체적 조건이 아킬레스건이 되었지만, 끊어 낼 수 없는 가족 관계나 학력, 경제력 등이 타인에게는 트집거리가 되어 약점으로 간주 될 수도 있다.

`더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도시를 등지고 물을 마주 보고 앉아 말하는 자조 섞인 악어의 한탄은 독자의 마음도 무너지게 한다. 겉모습과 다르게 토마토, 햇볕, 아이들을 좋아하며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싶은 악어는 작디작은 홍게를 무서워할 정도로 여리다. 홍게는 커다란 몸집을 가진 악어의 무게중심마저 흩트린다.

물속에 빠진 악어! 위기가 본연의 모습을 찾게 한다. 악어라는 걸 깨닫게 한다. 걸치고 있던 인간의 옷을 벗어버리고 수면 위로 올라간다. 화려하고 밝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을 본다. 수면 아래에서, 수면 위에서 본다. 그리고 안다. 그들에 스며들어 섞이어 살 수 있음을 안다. 꼬리를 자르지 않고도 지낼 수 있음을 안다.

물속에 있는 내가 뭍에 있는 나를 보며 나를 인정한 악어는 말한다. `나는 악어야. 도시에 사는 악어야. 나는 내 꼬리가 부끄럽지 않아.' 이미 잘라낸 내 꼬리는 무엇인지…생각하게 하는 악어의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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