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전시회에 다녀왔다. 지난 5월 고려 불화인 수월관음도가 수장고로 들어간다는 뉴스에 다녀왔던 박물관 나들이 후 오랜만에 가는 서울 구경에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뭉크의 작품을 소장처 23곳에서 모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특별함에 가슴이 설레었다.
전시회장에 들어가 작품을 보았을 때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눈 덮인 숲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보니 들은 내용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났다.
뭉크의 `절규'는 특유의 표정으로 수없이 복제되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있어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알고 있는 작품이다. 메케베르크 언덕 위로 보이는 핏빛 하늘, 거친 선을 물결치듯 겹쳐 어지럽게 돌아가는 선들, 눈, 코, 입만으로 간략하게 표현된 해골바가지 같은 표정에서 두려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순히 인간의 두려움과 절망을 그린 것으로 생각했는데 작품설명을 보니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문명인으로서의 두려움, 패닉, 극한의 공포를 묘사한 것이며 주인공의 고립은 그의 정서적 상태와 강박을 나타낸 것이었다. 고립을 표현한 다른 작품은 `불안'으로 `절규'와 같은 배경인 메케베르크 언덕의 핏빛 하늘,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지만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사람들 각자의 외로움과 고독, 고립감과 불안함이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것 같았다.
뭉크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대비 기법을 사용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 작품이 많았다. `해변의 두 여인'은 젊은 여인은 밝게, 늙은 여인은 어둡게 흑백 대비가 되도록 그려 삶과 죽음처럼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비는 `마돈나'라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인의 성스러운 모습과 팜므파탈의 모습을 모두 가진 인물로 표현된 것이 이상하고도 신기했다. 하지만 배우자가 있었으나 뭉크와 사랑했고 이혼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한 첫 번째 여인, 뭉크와 연애 중 그의 친구와 결혼한 두 번째 여인, 그리고 그에게 집착하고 결혼을 강요하며 쏜 총알이 손가락에 맞아 화가로서의 삶을 위태롭게 했던 세 번째 여인까지 그의 연애사를 알아갈수록 그가 그린 여성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뭉크는 작품을 자연에 노출 시켜 노화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어, 작품에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는 `로스쿠어'(Rosskur)기법을 사용하였다. 작품 `붉은 집'에는 곰팡이 반점과 새의 배설물이 있다고 하여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이런 명작에 있으니 화가의 의도대로 곰팡이도 새똥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내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뭉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화가로서의 천재성뿐만이 아니라, 여느 화가들처럼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 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당신은 그 일상의 성스러움을 이해해야 하며, 이 일상에 대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처럼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한다.”라는 그의 선언과 같은 문장에서 결연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불안과 상실의 감정으로 삶이 불행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 다시 시작되는 오늘에 감사하며 새로운 한 주도 신나게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