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모두가 바라는 것이 복(福)이요, 세상사람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 화(禍)이다. 예외는 없다. 누가 화를 좋아하고 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복의 뜻은 행운과 행복, 또는 거기에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때는 무사(無事)가 복의 뜻이 되기도 한다. 즉 화를 입지 않으면 복이라는 것이다. 화는 불행과 근심, 재화와 액화를 뜻하는 말이다. 복은 복 그 자체로 완전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복은 열린 결말과 같아서이다. 즉,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복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을 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이 끝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을 맞는 것은 쉽지 않다. 신문에서 종종 보이는 로또 1등 당첨자의 뉴스는 대부분이 배신과 불화, 패가망신으로 얼룩져 있다. 왜 모두가 복이라고 생각하는 로또 1등 당첨의 결말이 화로써 끝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 모두가 복만 취하려 했기 때문이다. 복은 복 그 자체로는 불안정한 단어이다. 반드시 혜(慧)가 함께 있어야 하는 단어이다. 복은 혜가 없으면 언제든 화로 변하기 쉽다.
혜는 지혜이다. 복이 나에게 왔을 때 그 복을 영원한 복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인들은 복혜양족(福慧兩足)이라고 했다. 복과 혜가 모두 족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족족 혜족족이다. 사실 족이라는 단어 역시 혜의 영역이다. 만족(滿足)이라는 단어에서 만은 차다, 가득하다는 뜻이며 족은 발 족이라는 뜻이다. 즉 사람은 무엇이든 발목까지 찼을 때 만족해야 한다. 발목 위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욕심이 된다.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로또 1등은 발목이 아니라 이미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이다. 거기에 지혜마저 없다면 화는 자동 당첨이다.
성현들은 복을 한 번에 과하게 받는 것을 경계했다. 평생 받아야 할 복이 마르기 때문이다. 한 번에 받아 다 쓰면 복을 짓는 일만 남게 된다. 복을 짓는 일이야 복을 받든 안 받든 늘 해야 하는 일이지만 줄줄이 계속되는 화 속에서 복을 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로또 1등이라는 과한 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그렇게 큰 복이 필요한지. 밥을 굶고 있는가?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는가? 옷이 없어 헐벗고 있는가? 정말 그렇다 해도 그렇게 큰돈이 필요한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화를 부르는 욕심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을 받기는 좋아하나 복을 짓기는 싫어하고, 화(禍)를 받기는 싫어하나 죄를 짓기는 좋아하나니, 이것이 다 화복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 설사 안다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니라.'
복 받는 것을 좋아하고 원한다면 복을 짓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화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죄를 짓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지금 이렇게 써 놓으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는 것이다.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내 노동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내 물건,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었을 때 내 복이 쌓이는 것이다. 그것이 연을 만나고 시간과 공간의 조화 속에서 나에게 복이 되어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복을 짓고 쌓음과 동시에 나에게 오는 복을 슬기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준비해야만 한다. 그래야 내 복이 진정한 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