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라는 작가가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살며 영어와 불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작가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어를 `작가 언어'로 선택, 이 시대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불어를 구사하는 작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세계마저 한정 짓고 창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멕시코, 파나마 등지에 체류하면서 지낸 여행자로서의 삶은 서구적 사유의 틀을 버리는 사상적 변모를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삼국유사를 읽을 만큼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 <빛나>와 제주도에서 겪은 일을 소재로 한 <폭풍우>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그의 세계관은 정신적 지주인 아프리카를 비롯해 다양한 민족의 역사, 문화를 아름답게 묘사함에 원동력이 되었고,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사상인 인간성 탐구와 자연을 대하는 자세의 배경이 된 듯하다. 그런 연유로 한림원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르 클레지오를 선정했다.
르 클레지오는 자연을 인간과 어우러지는 존재로 추구하려는 그의 사상을 그림책으로도 펼쳐냈다. <나무 나라 여행/J.M.G. 르 클레지오/문학동네>가 그렇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던 주인공 소년은 배도 자동차도 기차도 아무것이 없어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을 생각해 냈다. 오래전 숲을 거닐 때 느꼈던, 나무들이 말을 걸고 싶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기억해 내고 결정했다. 그렇다. 나무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소년은 들어간다. 나무들 세계로. 물론 처음에 나무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수줍음이 많은 나무들의 속임수란 걸 소년은 알아챈다.
사람이 다가오면 긴장하기 때문에 나무들은 뿌리에 힘을 주고 가지를 움직이지 않으며 경계를 한다. 나무들과 서먹서먹한 사이인 사람들이 숲이 고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소년은 나무와 이야기 나눌 방법도 안다. 나무들이 새들과 매미들을 겁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휘파람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성급히 다가가지 않고, 큰 소리 내지 않고 고요히 앉아 기다리면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소년의 입을 빌어 `나무들을 길들인다.'고 표현한다.
<어린 왕자>식 길들임과 맥이 맞닿는 소년만의 길들임이다. `무언가를 길들이지 않고서는 그것을 잘 알 수 없지. … 인내심이 있어야 해. 그냥 앉아 있어.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 기다리고 알아가고, 추억 만들고 …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어린 왕자 중-
그러다 보면 나무들의 하품과 큰 숨소리 그리고 땅 밑 어딘가에서 심장이 뛰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된다. 비단 나무들에게만 통용되는 방법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마음 여는 속도에 무관하게 나의 속도로 훅, 치고 들어가거나 미적이며 망설이면 상대방은 땀구멍까지 막아가며 긴장하게 된다. 공격이라 여겨 방어하느라 뾰족한 침을 날리기도 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는 내가 더 아프다고 고백한다.
나무의 언어, 나무의 음악인 휘파람으로 서로를 길들이고, 기다리며 내 시간을 내 나무를 향한 시간에 쓴다면!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숲의 세계, 나무들의 나라 입성에 성공하는 것이다. 내가 너의 세계로 갈 수 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