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7미터의 월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흐르는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송계계곡은 7㎞에 이르는 계곡이다. 이곳 송계계곡은 청풍호로 내려가는 맑고 풍부한 물이 휘돌아 가고, 계곡에는 널찍한 바위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하여 많은 사람이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바로 이곳 송계계곡에서 한수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조선후기 송시열 등 5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황강영당(197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경내의 건물은 황강영당·수암사·서고·재실로 되어 있는데, 황강영당은 본래 1726년(영조 2)에 창건되어 그다음 해에 황강서원(黃江書院)으로 사액 되었다. 그 후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황강영당으로 개칭되었으며, 그 자리에 송시열·권상하·한원진·권욱·윤봉구 등 5인의 영정을 모셨다.
현재의 황강영당의 건물은 수차 중수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목조기와집이다. 건축형식은 자연석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설치하고 사각기둥을 세운 납도리집으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영당 건물의 남측에는 송시열의 필적으로 된 `寒水齋(한수재)'라는 편액이 있으며, 동측에는 초서로 된 `黃江影堂(황강영당)'이라는 편액이 있다.
주위에는 막돌 담장을 설치하고 동측과 남측에 각각 일각문을 두었다. 영당의 동측 일각문 밖에는 인근에서 옮겨온 것으로, 1797년(정조 21)에 조성된 황강서원묘정비(黃江書院廟庭碑)와 1720년(경종 원년)에 조성된 수암선생구택지비(遂庵先生舊宅之碑)가 서 있다.
그리고 “나는 평생 명나라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며 16세기 후반 이후 조선에 풍미하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인 수암사는 황강영당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권상하는 호가 수암(遂庵) 또는 한수재(寒水齋)로서 송시열에 이어 기호학파의 지도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이다. 사당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기와집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사당 주위에는 막돌 담장을 두르고 일각문을 설치했으며, 일각문 바깥에는 재실(齋室)이 있다. 이곳은 제향 때 사용되며 유림이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재실건물은 工자형 평면의 목조기와집으로 대청 1, 방 7, 부엌 2로 구성되어 있으며, 팔작지붕과 우진각지붕이 겸비된 5량 집이다.
황강영당 및 수암사는 원래 황강리에 있었으나 이 지역이 충주댐 수몰지구가 되어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워졌다. 송시열이 사망한 직후부터 제자 권상하의 주도 아래 그의 유문(遺文)에 대한 수집과 정리가 시작되어, 1691년(숙종 17) 무렵 문집의 초고인 이른바 황강본(黃江本)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했다.
올봄이 가기 전에 조선 후기 대학자들의 혼이 서린 이곳 황강영당과 수암사를 방문해서 역사적 인물도 만나고, 학문과 예절의 기본 정신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