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뒷사람의 도로 톨게이트 요금을 대신하여 내어 주었는데, 그 뒷사람도 똑같이 하는 식으로 되어 하루 종일 뒷사람의 톨게이트 요금을 내어 주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은혜의 유통'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을 시작한 사람이 뒷사람에게서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을 테고, 바통을 넘겨받은 뒷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요.
부딪치는 수많은 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아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전해진 정호승의 `무릎'이란 시 또한 은혜의 유통이 될 겁니다.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사랑이 되었느냐/너도 무릎을 꿇어야만/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평생이 걸렸느냐/차디찬 바닥에/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무릎을 꿇고/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밤이 깊으면/먼저 무릎을 꿇고/찬란한 별들을 바라본다”
어디 따뜻한 시 한 편뿐만 일까요. 부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송구스러워지는 노래는 어떨까요. 먼저 정년을 맞아 일터를 떠나는 분들에게 “노래는 잘하지 못하니, 부디 노랫말에 은혜를 받으라”는 멘트를 하고 불러드리곤 하는 노래가 있는데, 이수인이 작사와 작곡을 한 `내 맘의 강물'입니다.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새파란 하늘 저 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이 또한 은혜의 유통일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군요.
깨끗한 환경을 지켜내야만 하는 일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같은 때,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쓰거나 자전거를 공유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도 어찌 보면 은혜의 유통이 아닐까 합니다.
가짜 물건, 잘못된 신념, 나쁜 습관 등의 유통처럼 은혜롭지 못한 유통이 쉽게 눈에 뜨이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요.
우리들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둘러보면, 은혜의 유통이 자리를 잡아야만 할 일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은혜의 유통이 잘 되는 사회는 적어도 부패하지는 않겠지요.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사람의 생애가 말로 다할 수 없는 생명의 은혜로 시작되는 만큼, 하늘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이 은혜의 유통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겁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지는 세상을 꿈꾸게 되는군요. 오직 은혜의 유통만이 살길이란 생각이 짙어집니다.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