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예찬
노인 예찬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5.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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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내 나이 60이 넘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슨 의미를 지닐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한마디로 정리하기 쉽지 않지만 나는 나이 먹은 내가 좋다. 살아냈다는 뿌듯함도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웠다. 가출도 했고, 비행도 저질렀고, 결혼 후에는 집사람 속도 많이 썩였다. 평탄한 삶은 재미가 없고 심심하게 느껴져서 항상 일을 만들면서 살았다. 요즘도 내게는 일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다. 아이들을 낳고 나니 아이들이 속을 썩인다. 말도 안 듣고 소소하게 말썽을 피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이 있다. 너희가 내 속을 썩이는 건 내가 할아버지 속을 썩인 거에 비하면 백 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러면서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 마음을 생각하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말썽을 피우고 싶어서 피우겠는가? 내 경우 말썽을 피우는 건 마음속에서 부는 바람이 자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바람이 불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말썽을 피우게 된다.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계속 피워 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젊은 사람들은 힘은 있지만 삶을 제어할 만한 지혜가 없다. 늙은이들은 삶을 제어할 만한 지혜는 있지만 성취할 만한 힘이 없다. 지혜가 없는 힘은 삶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른다. 어른의 입장이 되어 학교 가기 싫어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살아보면 명확히 그게 아닌 길로 가고 있는데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다.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보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달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다가 돌도 씹고, 체하기도 하고, 과식을 하기도 한다. 지혜 없는 힘은 제어장치 없는 기관차 같아서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다.

원래 삶 자체가 우여곡절의 연속이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사고도 치고 삶의 방향도 바꾸면서 살아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부터 다시 살라고 하면 싫다.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 삶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길이 없다. 살날이 구만리인 젊은이들의 삶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젊은 사람을 보면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나이 든 사람들은 살아냈기 때문에 존경스럽고 젊은이들은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이제 조금만 더 살면 된다고 하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젊은이들이여 나이 든 사람들을 백안시하지 말라. 당신들은 살아내야 하지만 우리 같은 노인들은 살아냈다. 70~80년의 역사를 마음에 품고 사는 노인들의 마음을 개인별로 살펴보면 모두가 한 편의 영화이자 드라마이다. 한편의 완성된 인생 드라마를 품고 사는 노인들과 인생을 논해보라.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인생은 막판에 가야 평가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내일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인문학(철학)을 하는 사람은 60이 돼봐야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를 알고, 성직자는 70이 돼봐야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가려진다.

20세기 천재 철학자인 니체가 하는 말도 있다. 세상의 모든 할머니는 다 철학자이다. 젊은이보다는 늙은 사람이 철학적 깊이가 있다.

늙은 걸 한탄만 할 필요는 없다. 늙어서 좋은 일이 살펴보면 아주 많다. 노인들은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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