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산책하다가 갑자기 멈춰 서 같이 가던 독일의 물리학자 요르단(1902-1980)을 돌아보며, “저 달이, 내가 쳐다볼 때만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정말로 저 달이 자기가 보지 않을 때 없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사물의 실재를 누구보다도 더 굳게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마치 관찰행위가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반어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일화는 아일랜드의 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인 버클리(1685-1753)가 던진 “숲 속에 있는 나뭇가지가 부러졌을 때 소리가 났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존재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제이기도 하다.
이 우주가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학은 이 우주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존재하고, 내가 보지 않는 중에도 하늘에 달은 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을 `과학적 존재론'이라고 하자. 양자역학이 나오기까지 과학자들의 이러한 믿음은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인슈타인일 것이다. 그는 스스로 양자역학의 성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죽는 날까지 양자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주의 실재를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저 달이 내가 쳐다볼 때 존재하지만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개가 듣고 웃을 일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나오고 난 후 자연과학에서조차 그런 생각이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게 되었다. 대상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관찰 행위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불확정성 원리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또 다른 기초는 국지성(locality) 원리다. 어떤 물체가 다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텔레파시 현상을 과학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지성 원리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뉴턴을 괴롭혔던 문제도 바로 국지성 원리였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의하면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현상은 접촉이 없이도 일어난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중력장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양자역학적으로 말하면 중력자의 매개를 통해서 중력이 전달되기 때문에 국지성 원리를 위반하지 않는다.
우주는 누가 관찰하건 말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우주의 모든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은 국지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국지적 실재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국지성과 실재성이라는 이 두 큰 믿음은 자연과학이 서 있는 반석이다. 고전역학에서 이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양자역학이 나타난 현대에도 대부분 물리학자는 국지적 실재론을 믿었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마치 이 국지적 실재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인슈타인과 동료과학자가 양자론이 성립한다면 국지성 원리나 과학적 실재성이 부정돼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이것이 소위 그 유명한 EPR(Einstein, Podolsky, Rosen) 역설이다.
이제 국지적 실재론을 받아들인다면 양자역학은 틀렸거나 최소한 수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이미 텔레비전에서부터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니 양자역학을 버릴 수도 없으니 국지적 실재론을 버릴 수밖에 없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결론적으로 국지적 실재론이 틀렸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과학자들도 믿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우주는 전에 생각하던 것과 같이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모든 것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상호작용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과 사실 사이에서 과학자는 사실의 편에 서야 한다. 그래야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