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인식 속에 수많은 날을 함께 하면서 꽃과 곤충이란 생명체를 새로이 되살려낸 사진가 조유성. 그는 햇빛과 물, 바람과 이슬 속에서 한 세상 소리없이 살아가는 곤충들의 희로애락을 벗 삼아 반세기의 세월을 보냈다.
하늘의 구름과 땅의 바람이 이는 들과 산으로, 그리고 냇가를 찾아 긴 성상의 편린을 필름 안에 차곡차곡 담아온 그가 2004년 끝머리에 서서 수십만 장의 필름 속에서 뽑아 낸 4백여 가지 8백여 컷의 곤충을 한 권의 사진집으로 집대성해 세상에 내 놓았다.
행여 인간의 허무한 욕심 때문에 이 땅 위에서 사라질지 모를 한낱 미물에 불과한 곤충들이었지만 그들도 하나의 생명체로써 자연을 파괴해 온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우둔한가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가 이전에 곤충들의 친구인 그는 불혹의 나이를 넘으면서부터 꽃과 곤충을 찾아 찍는다기보다 어쩌면 자신의 영혼의 안식처를 찾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나의 꽃과 곤충 사진작업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자연과의 만남에서 진솔한 섭리를 배우고 순환되는 윤회의 실체였어요.”
어떤 곤충의 알은 사람의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것에서부터 수풀의 풀잎 사이사이에 위장한 고치나 애벌레를 찾아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날 동안 의지와 집착, 열정의 땀과 시간이 소모되었을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그는 또 신음하는 도회지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안겨 준 미물을 살펴 찾아내고, 사진을 찍다 보면 세월이 오고 가는지를 느끼지 못해 역마살의 심리를 더 부추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친구(꽃과 곤충)들을 볼 때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리라. 그렇게 자연과 교감하던 어느 날 러시아 문화원장이 초대전을 제안해 러시아연방 교육부초청으로 모스크바 레닌 박물관에서 곤충 사진전을 열었다.
2004년 12월4일은 한국의 사진가 `조유성의 날' 인듯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삼사백여 명의 관람객이 오픈식장을 가득 메웠고, 율리아노브스크종합대학 총장이 수여하는 명예예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시 내내 매일 1천여 명의 관객이 한국의 꽃과 곤충들을 보고 갔다. 그는 사진 1백60여 점과 사진집 1백 권을 러시아에 기증했다.
가냘프고 평범한 여성에 지나지 않았을 그는 생전 처음 손에 쥐어 본 집안의 캐논 카메라가 이렇게 삶의 희열을 안겨 줄지 꿈에도 알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에게 사진은 생소했었다. 광주여고를 졸업하고 음악과 조각, 미용, 그리고 요리 만드는 것이 여성이 갖는 취미 전부로 알았다. 결혼 후 그의 집에 누가 사다 놓았는지 카메라가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이 인연으로 사진을 배웠는데 처음 1년을 제외하고 오십여 년을 꽃과 곤충만을 찍었다.
꽃과 곤충사진 작업을 회고하면서 그는 인간의 눈에 매우 경이롭고 신비스럽게 보이는 현상을 곤충 세계에서 많이 만났다고 했다.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고귀함을 알게 해준 많은 곤충이 지금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도 했다. 긴 이야기를 나눈 후 그가 평소 잘 만지지 않았던 피아노 앞에 가더니 이내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옆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여전히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