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명절은 큰 가족 축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설은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얻어 입는 때때옷과 빳빳한 세뱃돈, 그리고 풍성한 음식과 놀이까지 부족함 없이 하루를 맘껏 즐길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요.
설을 앞두고 대목 장날이 열리면 엄마는 가족 수 대로 새 옷과 새 양말을 사서 안방 벽장 속에 넣어두셨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라는 선물이었죠. 눈치 빠른 어린 자식들은 새 옷 입을 마음에 잠을 설쳐가며 첫 동이 트기를 기다렸습니다. 창호지 문틈으로 새벽 푸른빛이 드리울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온 식구들이 안방 아랫목에 빙 둘러앉아 장보따리가 풀리길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기대에 부푼 눈망울 속에 보자기에 담겼던 색색의 옷과 양말은 어린 주인을 찾아가는 것으로 새해 첫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푸짐한 차례상을 물리고 시작되는 세배는 또 얼마나 셀레는 시간이었는지요. 세뱃돈으로 허리춤이 불룩해지면 아이들은 골목으로 몰려나와 윷놀이, 연날리기, 자치기 등으로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한바탕 신명나는 놀이를 통해 건강하고 풍성한 한 해가 되길 기원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소박한 설날 풍경,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팽배해지고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면서 명절의 의미도 퇴색한 채 미풍양속으로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가다 보니 시골집 골목에는 아이도 어른도 없이 썰렁하기만 합니다. 이번 명절에는 그날의 추억을 상기하며 잊혀가는 우리의 전통놀이와 노래로 가족 간의 정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도 금세 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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