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도 익숙해지면 신체의 일부가 된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희망에 기대는 만큼 초라한 것은 없다.
요즘 교사들은 절망한다. 아니 슬픈 현실에 직면했다. 오죽하면 천직(天職)이라고 여기던 교직을 낮고 천한 천직(賤職)이라고 여기겠는가.
교사가 학생을 포기하면 교육이 무너진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낸다. `절망이 문제가 아냐. 절망은 받아들일 수 있어.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희망이라고'했던 영화 `클락와이즈'에 등장한 대사처럼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고문을 하며 버틴다.
법으로는 교사에게 가르칠 권리, 학생을 지도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현실은 과연 그럴까?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말도, 임금, 스승,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다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도 통하지 않는 요즘이다.
교사들은 학교에선 학생의 눈치를 봐야 한다. 물론 학부모의 심기도 건드리면 안 된다. 교실에서 교사의 소신과 철학은 필요 없다. 오직 지식만 전달해야 살아남는다. 그게 현실이다.
최근 수학여행을 앞두고 학부모 민원 전화를 받았다는 한 교사를 만났다. 교사 왈“아이들이 아프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숙소에서 얼마나 걸리느냐, 아이들이 이용할 식당의 음식의 질은 높냐, 우리 애는 예민해서 깨끗한 숙소를 이용하지 않으면 잠도 못자는 데 꼼꼼히 알아봤느냐 시시콜콜 따지는 데 진이 다 빠졌다”고 하소연했다.
중학교 교사인 또 다른 지인은 초등학교에서 기초 학력을 쌓지 않은 한 학생을 정규수업을 마친 후 보충 지도를 하려 했더니 학부모에게 항의를 받았다. 학원에 보내면 될 일을 왜 우리 아이 창피하게 만드느냐는 게 이유다.
몇 해 전 명예퇴직을 한 교사에게 물었다. 학생들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학교를 떠나려 하냐고. 돌아온 답인즉슨 “수업종이 설레고 기다린적도 있지만 이젠 수업종을 들으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두 발이 무거워진 모습을 깨닫았고 학교를 떠날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교사들의 권한은 줄어든 반면 학부모와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져 교실에서 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이 최근 공개한`2024년 지역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정된 교원지위법 시행으로 교권침해 심의기능이 학교교권보호위원회에서 지역교권보호위원회로 이관된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총 1364건의 교권침해 사건이 심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15건 이상의 교권 침해 사건이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서 심의된 셈이다. 전국 17개 시도의 교권보호위 개최 건수는 2020년 1197건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5050건으로 3년새 5배 가까이 늘었다. 충북 역시 2020년 32건이었던 개최 건수는 지난해 195건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교권침해가 급증하면서 교사들은 교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과도한 심리적 부담에 따른 정신적 소진으로 힘들어한다. 충북도교육청이 교육활동 침해 및 교직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치유 지원 현황을 보면 2021년 한해 173명이 신청해 1604건을 지원했는데 올해 1학기(7월말 기준)에만 신청자만 424명, 2148건을 지원했다.
지난해 중도퇴직한 교사는 7600여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과 교사노동조합연맹이 발표한 `2019~2023년 초·중·고등학교 중도 퇴직교원 현황'분석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중도퇴직 교원은 총 3만3705명으로 집계됐다. 초등학교가 1만4295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교 1만1586명, 고등학교 7824명이었다.
학생은 우리의 미래다. 그 미래를 책임지고 가르치고 육성해야 할 교사들이 무너지고 있다. 교사들의 설 자리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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