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없는 개혁은 없다
진통 없는 개혁은 없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4.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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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이 고민거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마크롱은 40%를 웃돌던 취임 초반을 제외하곤 20~ 30%대 박스에 갇혀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대중이 싫어하는 개혁 정책들을 밀어붙인 결과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대표적인 게 연금개혁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적자를 목전에 둔 연금재정을 살려야 한다며 연금을 수령하는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개혁안을 관철했다. 당시 국민 70%가 결사 반대했다. 반대시위와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가 전국을 휩쓸며 나라 전체가 혼돈에 빠졌다. 대통령 지지율은 뚝 떨어져 20%대를 맴돌았다.

마크롱은 의회와도 싸웠다. 법안의 하원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의회 동의 없이 정부가 단독 입법을 추진할 수 있는 헌법상의 비상 조항을 발동했다. 의회에 대한 선전포고였고, 야당들은 즉각 대통령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표결에서 마크롱은 단 9표차로 정권을 연명했다. 그야말로 정치적 명운을 건 모험을 한 셈이었다.

그는 임기 첫해부터 법인세 인하,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공공 일자리 감축 등 계층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한 개혁정책을 강행했다. 취임 2년만에 경제성장률이 1.1%에서 2.29%로 높아지고 청년 실업률이 23%에서 19%로 떨어지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지만 민심은 평가에 인색했다.

마크롱이 윤 대통령과 다른 점은 불통 대통령이라는 평가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심과 정면으로 맞서 일전을 불사했지만 국가의 장래가 달린 거대한 의제를 놓고 소신을 다퉜다는 점을 인정받는다. 대중의 반대가 불가피한 민감한 어젠다를 과감하게 리스트에 올려 추진한 대목도 불통보다는 뚝심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게 한다.

고갈 시점이 계속 앞당겨지는 우리 국민연금 문제의 심각성도 프랑스 못지 않다. 30년 정도 지나면 동이 날 것으로 추계된다. 더 내거나, 덜 받거나, 수령 연령을 늦추거나, 이를 혼용하는 방식의 개조가 불가피하지만 지갑을 열어야 하는 국민의 호응을 얻기란 쉽지 않다. 역대 정권마다 개혁의 시급성을 인식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해 폭탄 돌리기가 된 이유이다.

3주간 학습과 토론을 하며 연금개혁을 숙의해온 국회 연금특위 시민대표단이 지난주 다수가 선택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안이다. 더 내고 더 받자는 것이지만 내는 보험료율은 4%포인트 인상하고 타먹는 소득대체율은 10%포인트나 올렸으니 적자폭이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기금 고갈 시기가 2061년으로 지금보다 6년 남짓 연장된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덜 내고 더 받는 혜택을 누리고 10대와 20대들에게는 바닥난 재정을 물려주겠다는 안을 개혁이라 말할 수 있는지 민망스럽다.

정부는 시민대표단의 선택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차관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에 대안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미래세대를 위해 회피해서는 안된다”며 개혁을 재촉했지만 정부가 한 일은 국회 연금특위 활동 결과를 기다린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연금특위 역시 22대 회기 내에 연금개혁을 완성하겠다며 호기롭게 출범했지만 임기 막판에 시민대표들을 통해 맹탕 개혁안을 내놓은 게 한 일의 전부다. 정부도 의회도 총선을 앞두고 국민 눈치만 살핀 탓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프랑스 사례에서 처럼 연금문제에 손을 대는 일은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는 일과 같다. 마크롱은 거리로 나가 자신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을 만나 토론하고 설득해야 했다. 격렬한 진통을 감내할 각오 없이 제대로 된 개혁안을 창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당장의 반대를 회피하기 위해 미래세대에 짐을 지우는 땜질 처방을 개혁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 공론화위 보고서를 토대로 최종 개혁안을 짜내야 할 국회 연금특위가 새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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