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해당화
수서 해당화
  • 이연 꽃차소믈리에
  • 승인 2024.04.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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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이연 꽃차소믈리에
이연 꽃차소믈리에

 

농막 쉬어家(가)에는 수서 해당화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한그루는 들어가는 초입에, 다른 하나는 내가 늘 산이라고 우기는 140평의 작은 동산 양지바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무를 심은 사연은 각각 다르다. 입구 수돗가 쪽에 있는 녀석은 문우의 집을 방문했다가 활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의 모습을 보고 반해서, 다른 녀석은 훗날 남편과 내가 흙으로 돌아갈 자리이다. 수목장을 생각하고 나무를 고를 때 늘 푸른 소나무를 염두에 두기도 했었지만, 이왕이면 꽃도 아름답고 수형도 볼만한 나무였으면 했다.

수서 해당화의 꽃말은 산뜻한 미소다. 같은 나무이면서 극과 극의 사연을 지니게 된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다.

또 쉬어가에 걸음을 하는 이들이 잠시나마 시름을 내려놓고 꽃말처럼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도 한몫했다.

언제나 봄이 한발 더디 오는 농막 꽃밭에도 수선화를 비롯하여 히아신스, 앵초, 돌단풍꽃이 피어나 고운 자태를 뽐낸다. 작년에 눈부신 모습을 보여주던 옥매화도 변함없이 꽃망울을 듬뿍 달고 날이 따듯해지기를 기다린다. 수돗가 옆에 서 있는 수서 해당화를 바라보니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에 제법 많은 꽃망울을 매달고 있다. 올해는 꽃을 따서 차를 덖어도 나무에 미안하지 않을 만큼 꽃이 피어주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간혹 수서 해당화와 꽃사과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꽃자루 색으로 구분하면 쉽다. 꽃사과 꽃자루는 초록색이지만 수서 해당화 줄기는 자주색이다.

또한 수서 해당화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도 불린다. 꽃줄기가 실처럼 가늘어서 수서 해당화, 원산지가 중국 서부지역이라서 서부 해당화, 나무에서 꽃이 피어난다고 해서 나무 해당화, 한약명으로는 수사 해당화라고 한다.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꽃도 아름답거니와 향기도 그윽하다. 차로 덖을 때도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서 하거나 한 송이씩 덖는 다른 꽃들과 달리 수서 해당화는 잎과 여러 꽃송이가 매달린 것을 온전한 상태로 덖기 때문에 뜨거운 팬에 올려놓은 모습도 눈이 부시다.

차를 덖기 위해 꽃을 딸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고했을 시간이 결코 가벼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나의 꽃밭에서 자란 꽃들로 차를 만들기 위해 꽃을 따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손끝이 바르르 떨리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 흔들리는 떨림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꽃에 대한 나름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쓴 시간을 잊지 않을 것. 차를 덖으며 꽃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 차를 우리고 마실 때 꽃의 헌신에 감사할 것, 차를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생색내지 않기다.

유리 다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며 하늘하늘 꽃이 피어난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시각, 후각, 미각을 다 자극하는 꽃차 중 으뜸인 차가 수서 해당화 차가 아닐까 싶다. 지인들에게 꽃차 나눔을 했을 때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차이기도 하다.

이구동성 “어머. 이렇게 예쁜 거로 어떻게 차로 마셔” 였다.

“예쁘기만 한 줄 알아. 건강에도 좋아”라고 말하며 장식으로 바라보지만 말고 꼭 우려 마시라고, 그래야 다음에 또 주겠노라.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사실 덖음차를 선물할 때 우려서 마실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커피나 자극적인 음료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꽃차의 맛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전에는 커피를 좋아했고 즐겨 마셨다. 하지만 지금은 꽃차 소믈리에 아니던가.

늘 꽃을 생각하고. 꽃을 심고 가꾸며, 그 꽃을 따서 차로 덖어 우려 마신다. 그리고 꽃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다. 내가 꽃에 미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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