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탁발(德山托鉢) 5
덕산탁발(德山托鉢) 5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4.04.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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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산새는 아는가?

일이 없어져야만 오히려 일을 이루게 되나니

사립문 닫아걸고 한낮에 졸고 있다네.

깊은 곳에 사는 새들이 나의 외로움을

알아차려 그림자와 그림자가 이어지고

창문 앞을 지나가고 있구나.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단도직입형 공안인 무문관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5.입니다.

설봉과 암두, 두 제자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덕산선사는 암두를 방장실로 불러들입니다. 아마도 덕산 선사는 자신의 자유로운 경지를 몰라주는 제자들에게 서운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암두선사가 들어서자 덕산 선사는 서운한 낯빛으로 물어봅니다. “그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이 때 암두 선사는 스승의 귀에다 대고 무엇인가를 비밀스럽게 속삭입니다. 아마도 설봉에게 이야기했던 `궁극적인 그 한마디의 말', 즉 말후구(末後句)였을 겁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이처럼 때로는 제자가 스승을 가르치기도 하는 법입니다.

다음 날 덕산 선사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던 그 자연스러움 대신에 이날 대방에 오른 덕산 선사는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제자들을 압도하는 위엄으로 대중을 서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이 모습을 본 암두선사는 박장대소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이제 노스님이 궁극적인 한 마디의 말후구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기뻐할 일이로구나! 이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라고 말입니다.

암두라는 선사가 스승 덕산 선사의 귀에 속삭였던`말후구'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에 대해 속 시원히 답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미 왁자지껄한 열세 번째 관문도 통과했을 겁니다. 말후구, 바로 그것은 `이타(利他)'의 길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덕산선사가 자리(自利)에는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타(利他)의 경지에는 아직 아니라는 겁니다. 즉 덕산 선사는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제자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타적인 스승의 길은 잠시 간과해 버렸다는 것이지요.

암두 선사는 스승 덕산선사께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스님! 혼자서만 자유를 만끽하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사찰 안의 제자들은 어찌하시려고 그러시나요.”

`말후'라는 표현에서 말(末)은 `끝'이나`정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전통에서는 적어도 자신만 정상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정상에 오른 자는 삶의 정상에 오르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제자들과 중생들을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정상[末]에 오른 다음[後], 그는 타인을 정상으로 이끄는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말후구', 이것이야말로 바로 방편이라는 인데요. 제자들이 깨우침에 이를 때까지 덕산선사께서는 여전히 법당에서 위엄을 갖춘 스승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제자들은 덕산선사를 반드시 넘어야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은산철벽과 같은 스승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는 말이지요.

비록 방장실에서 덕산 선사는 여전히 졸리면 자고 속이 더부룩하면 시원하게 볼일을 보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만약 너희들이 “나를 넘어설 수 있다면 너희들도 또한 나처럼 자유로워지리라!”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 1.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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