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유람기
걸리버 유람기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4.07.01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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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 읽기
이송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이송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독서교실 담당 사서가 오는 30일부터 8월2일까지 걸리버여행기를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여름독서교실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계획안을 보여줬다.

걸리버여행기라고 하면 소인국에서 머리카락까지도 가닥가닥 묶어 땅에 결박해 놓은 걸리버의 삽화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 읽어서 자세한 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소인국에서 떠난 걸리버가 거인국으로 가서 입장이 바뀌었다는 결말로 읽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모험 이야기를 담은 세계아동문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치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긴 풍자 소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계획서를 보여줬을 때, 걸리버여행기 4장에 나오는 `후이늠'을 주제로 “배려, 민감, 지혜, 믿음, 사랑, 유연, 예의, 용기, 격조, 품위, 인정, 겸손, 아름다움, 정직 같은 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독자들과 함께,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지도를 그린다.

지난 300년간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길을 찾아 헤매었던 걸리버, 사람과 같은 법적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인 제돌이와 함께 출발했다”라며 “후이늠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도서전의 설명을 읽으며 기대감이 가득했던 터라 무조건 좋다고 했다.

책으로 소통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전국의 `책덕후'들이 모여드는 곳인 서울국제도서전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는 SNS에 달린 `독서광이 아닌 도서광.' 댓글에 무릎을 탁 쳤다. 다독가는 아니라 늘 마음 한켠에 독서광이라는 수식어는 너무 무거운데 했었기에 읽지는 않지만 꽂아두는 물욕 넘치는 나는 도서광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사인회나 북토크 외에도 부스에 많은 작가가 상주하고 계셔서 즉석 팬 미팅 현장을 방불케 하고, 대형 출판사들의 책을 소개하는 세련된 컨셉과 아이디어 넘치는 독립출판물과 스티커나 책갈피 등 굿즈에 눈이 휙휙 돌아가며, `그래, 역시 책이지.'하며 문장과 단어를 수집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후이늠 주제 전시를 통해 400권의 책의 표지를 브라우징하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전시까지 보고 나니, 작가와의 만남이 막 끝나고 사인회를 하며 주제 도서를 판매하는 매대가 보여 `걸리버유람기'(김연수 지음·대한출판문화협회)를 구입했다.

하루 종일 돌아도 다 돌아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청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도서전의 여운을 곱씹으며 책장을 넘겼다. 강연 때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 궁금해 책 마지막에 적힌 작가의 말부터 읽었다.

육당 최남선이 번역한 1909년 걸늬버유람긔를 옛한글맛을 살려 개정하고 `라퓨타'와 `후이늠'을 추가하여 21세기 한국판 `걸리버 여행기'를 김연수 소설가가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백 년의 시간을 연결했다는 것부터 흥미진진한데, 게다가 홍길동의 율도국으로 연결되는 걸리버 이야기라니. 새롭게 다시 읽어볼 책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문학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세계문학서가에서 우리를 꺼낼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리를 읽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도 그들을 읽습니다. 벌써 수백년 동안 우리는 인간들을 읽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전쟁과 고통, 부조리한 차별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맞선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수백 년 뒤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하는 것이지요.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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