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화를 내다보면, 마음이 켕기고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팩트(fact)에 대한 부분만 건드려야 하는데, 더 지나치게 대했기에 그런 겁니다.
자신에 대한 분노마저 덤터기로 상대방에게 옮겨버릴 때가 있어 늘 조심스러워요. 산책을 하다 만난 이름 모를 나뭇가지에는 아직 떨어내지 못한 겨울의 마른 잎들도 있었고, 꿈틀거리는 듯한 봄의 움들도 있더군요. 섞여 있거나 공존하는 것들에 대해 찬찬히 바라보고 싶습니다.”
올해 봄날 `분노를 옮기지 않는다'는 뜻의 `불천노(不遷怒)'라는 말을 붓펜으로 쓰다가 끼적거렸던 단상입니다.
겨울의 마른 잎들은 더 늘어나고 있는데, 여전히 화를 내고 있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 때가 많군요.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 거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더군요. 결국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일을 그르치곤 하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게 마련입니다.
제게 붙지 않길 바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미스터(Mr.) 욱'입니다.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해 관계를 어그러지게 만들고, 후회의 만리장성을 쌓는 실수를 거듭하기는 싫다는 거죠.
이에 대한 믿을 만한 견해를 듣고 싶었는데, 문화치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상미의 글이 마침 눈에 들어오더군요.
“눈을 감고 어깨를 쭉 편 뒤 3초 동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는 3초 동안 입으로 `후~' 마음껏 뱉는다. 여유가 된다면 5번을 반복한다. 심장과 허파가 조율되면서 놀라울 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뇌가 감성과 이성을 조율하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욱하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 기억할 것으로 내놓은 간결한 처방이었습니다.
6초의 시간을 잡으라는 게 포인트이더군요.
대뇌가 언어에 자극을 받고 편도체로 전달하는 시간이 3초, 편도체에서 대뇌피질로 가는 시간이 3초라서 6초라는 겁니다.
앞의 3초에 뒤의 3초를 더해야만 `6초의 미학'이 탄생한다는 거죠. 편도체와 대뇌피질이 하는 일이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니까요.
편도체는 본능적인 뇌로서 정서와 행동을 지배하고, 대뇌피질은 이성적인 뇌로서 생각과 언어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사정없이 귀청을 때리는 질문이 들려오는군요. “편도체로 살래, 아니면 대뇌피질로 살래?”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은 6초의 미학에 푹 빠져서 살고 싶습니다.
/에세이스트
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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