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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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4.05.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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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꽃피고 새들 노래하는 봄날 오후 2시가 되면 영시다방에서 그녀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거리로 나와 걸었다.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이곳 저곳으로 거닐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해가 저무는줄도 몰랐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그녀의 집앞에서 헤어지는 날이 거의 매일이었다.

집에 들어오면 이내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오면 그녀와 걷던 어제가 눈앞에 펼쳐져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좋은 얼굴로 회사에 갔다.

스물일곱이 되도록 여자와 만나는 것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다가 소개받은 그녀는 세상의 때묻지 않은 순수 그대로인 것 같았다. 별로 말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만난지 십여일이 지난 후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와 만남이 이어지면서 눈에 띄게 가까워져갔다.

자연스럽게 믿음으로 발전되어간 그녀와 나는 발길닿는대로 걷고 또 걸어가는 길의 끝이 없었고, 칼국수를 먹으면서도 무엇 하나 모자람을 모르는 즐거움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서너달이 지나면서 약혼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약혼선물을 준비하는 자리에 올케와 함께 나온 그녀에게 넉넉치 못한 사정으로 만족스러움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닷돈짜리 금목걸이와 백금반지외에 시계까지 삼십만원이 채 안되게 하여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그녀 또한 서운한 표정을 짓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살아래의 그녀와 초여름이 시작되는 유월초에 결혼식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부부가 된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하고 큰집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결혼은 했으나 모아놓은 돈이 없어 즐거움을 느낄 여유는 없었지만 하나가 된 마음은 무엇보다도 행복했다.

다음날 장인 장모님에게 인사드리러 가서도 아내는 신혼여행의 아쉬움을 보이지 않아 내심 고마웠다. 처가에서도 사위의 어려운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편안하게 대해주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신혼살림을 차릴 보금자리는 오십만원 전세로 얻은 단칸방 작은 공간이었는데 아내가 해온 장농과 화장대를 들여 놓으니 크게 만족하지는 못해도 그런대로 아늑한 것이 괜찮아 보였다.

더구나 큰집에서 가까운 이웃이어서 가뜩이나 한 가정의 삶을 등에 업은 무거운 책임의 불안감속에서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섬 하나에서 살아 나아갈 힘을 얻은, 참 좋은 아내와 함께 품은 가슴속의 따뜻함이 그 무엇보다도 좋았다.

그것은 곧 나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고, 젊음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부부로 다시 태어나 긴긴 날의 힘든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라고 아내와 함께 다짐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마음씨를 지니고 있는 듯 한 아내와의 사이에 그 어떤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기꺼이 흔들림속에서 온전히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두사람을 맺어준 하늘에 감사하면서 풋풋하면서도 뜨겁고 우아하게 살아 하나의 부부가 된 보람을 쌓으면서 서로를 토닥토닥 다독여 풍족하지 못한 삶을 극복하자고 두손을 마주잡고 위로했다.

세상은 도저히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했던가.

별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에게 온 소중한 인연, 아니 은인이 되어 함께 살아가게 된 아름다운 아내를 절대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비록 갈 길이 멀지만 한 순간 순간 다가오는 생활의 고난을 넘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에게는 사랑과 젊음이 있어요.”

아내는 “한평생 하늘을 날며 살아가는 새가 있는가 하면, 한평생 물속에서 헤엄치면서 사는 물고기도 있어 신기하다”면서 이같이 인생이 잘 풀리면 기뻐하고, 안풀리면 위안도 해가면서 살아가자고 말했다.

사랑 사랑 당신은 내사랑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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