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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없는 유서

기사승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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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지난 달 26일 아침, 충주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자 경찰관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열 살, 일곱 살 아이들이 고인의 죽음을 처음 목격했다. 큰 아이가 엄마 목에 감긴 줄을 가위로 끊고 살리려 했으나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고인과 같이 충주경찰서에 근무하는 남편은 당직을 서느라 비극을 막지 못했다. 아이들이 받은 충격과 상실감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날 이후 이상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고인의 남편에게 아빠도 죽을 거냐고 물으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7월, 고인에 대한 투서가 충주경찰서와 충북지방청에 날아들었다. 고인이 근무를 태만히 하고 동료들에게 갑질을 하며 해외 연수를 독차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충주경찰서에서는 근거 없는 음해라 판단해 각하처리 했으나 충북지방청 감찰은 고인에 대한 은밀한 감찰조사를 시작했다. 고인의 출근 시간과 사무실 도착 시간, 업무 준비를 마치고 집으로 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장면을 미행하고 체크하며 사진 촬영까지 했다.

지난 달 19일, 고인에 대한 1차 감찰조사가 있었다. 경력 10년차에 직급 없는 고인이 갑질 할 위치에 있지 않으며 해외 연수 기회도 고인의 업무 능력으로 정당하게 취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들을 챙기러 집으로 간 부분을 근무태만으로 몰기에 겸연쩍었던지 감찰은 경찰서 CCTV를 다 까겠다, 그러면 자유로울 사람 아무도 없다며 지각 세 번을 인정하라며 협박하고 회유했다. 이 협박과 회유는 고인이 품속에 감춘 녹음기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엿새 뒤인 지난 달 25일, 감찰은 지능범죄를 담당하는 수사관을 데리고 다시 고인을 찾아왔다. 사전에 통보가 없었기에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순한 면담인 줄 알았던 고인은 세 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3년 전에 분실한 지문원지 498매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충북지방청으로 지문원지를 보낸 우체국 등기 영수증을 제시하며 결백을 주장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인은 감찰이 어떻게든 분실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며 동료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뒤 경찰 내부망에는 추모 열기가 연일 뜨거웠다. 동시에 비인간적인 감찰 행태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특히 어린 아이를 둔 젊은 경찰관들의 원통과 울분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충북청 감찰은 모 언론을 통해 미행과 강압적 조사는 없었다며 변명과 거짓 해명으로 일관했다. 며칠 뒤 유족이 녹음 파일을 공개하자 그제야 혐의를 인정하며 경찰청 감사관과 충북청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강압적 감찰을 단지 `부적절'이라고 표현해 다시 한 번 공분을 샀다.

그들의 분노는 계속되고 있다. 어떤 경찰관은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장을 만들어 서명 운동을 벌이고 다른 경찰관은 소송에 필요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첫날에만 천여 명의 경찰관들이 동참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내부의 눈을 의식해 은밀히 돈을 보내거나 몰래 고발장에 서명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바라는 건 분명하다.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다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없도록 경찰의 감찰 행태를 완전히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그게 고인이 남긴 문자 없는 유서라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모바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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