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사다리 걷어차기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2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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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어릴 적 고향 뒷산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었다. 겨울이면 몰려든 예비군들로 작은 산골 마을이 밤새 웅성거렸다. 언 몸을 녹이려는 그들은 빨치산처럼 밤마다 우리 집으로 은밀히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장작불로 가마솥을 데워 밤새 라면을 끓였다. 나는 라면과 김치를 나르고 틈틈이 설거지도 도왔다. 그들은 안방이나 사랑방, 심지어 부뚜막에 걸터앉아 국물까지 다 들이켜고는 어깨에 총을 걸치고 느긋하게 산으로 돌아갔다. 농한기에 돈을 만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을 이장이 찾아와 우리를 무허가 영업으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라면 좀 끓여 달라는 예비군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작한 일은 산골 이장에 의해 무허가 영업으로 규정되었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부모님은 불법 영업주였다. 심술궂은 이장의 엄포에 더 이상 가마솥에 불을 때지 않았고 찾아오는 예비군들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렇다고 예비군들이 이장네로 몰려간 건 아니었다.

지난 17일, 전학연(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이 학교 급식 조리원의 공무원화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급식 조리원 신분이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을 마치 공무원이 되는 것처럼 호도한 것이다. 전학연은 교육 예산이 조리원 처우 개선에 쓰인다며 반대 입장이다. 얼마 전 청주에서 한 급식 조리원이 55도의 찜통 같은 식당 열기에 탈진해 쓰러졌다.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급식 조리원이 왜 힘들어하는지 관심조차 없던 전학연이 정규직 전환에만 어깃장이다.

경찰에도 1.600여 명의 주무관이 있다. 이들에겐 전문성을 인정받는 고유 업무가 있지만 정작 경찰 정원에는 빠져 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유령 같은 존재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어정쩡한 무기 계약직, 굳이 말하자면 중(中)규직 정도 되겠다. 아이를 낳아도 가족수당이 없고 열심히 일해도 성과급이 없다. 이들 역시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주장하며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경찰이나 행정관들의 은밀한 반대다. 같은 공간에서 웃으며 일하지만 나와 신분이 같아지는 건 다른 문제니까.

사다리 걷어차기. 자본 중심의 경쟁 구조에서 「사회적 사다리」는 흔히 오르자마자 걷어차야 내 위치가 보장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백만 킬로미터 무사고 경력 기사에게 운전 교육을 시킨다며 말끝마다 `새끼'를 매달았던 종근당의 이장한 회장. 살갗이 벗겨지는 열기를 견디다 못한 급식 조리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자 `밥하는 아줌마', `미친놈들'이라 윽박지르던 이언주 국회의원. 이 발언의 출발점도 사다리 걷어차기다. 남들은 나와 같거나 비슷해서도 안 되며, 각자 신분에 맞게 평생 누추한 모습으로 살다 가라는 졸렬한 우월감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올랐다. 영세 상공인들의 반발은 그렇다 쳐도 아무 이해가 없는 이들의 반대는 의외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그들의 소득은 줄지 않는다. 그들의 자녀가 비정규직이나 알바에 내몰려도 지금처럼 반대할 수 있는가. 이들의 반대 이유는 세금 낭비, 채용 형평성, 자질 부족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엔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산골 마을 이장의 심술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내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남들이 잘 되면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옹졸함 말이다. 사다리 함부로 걷어차지 마시라. 남의 사다리를 인정해야 내 사다리도 견고해진다. 그게 함께 사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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