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의 교훈 … 마지막 직함
이원종의 교훈 … 마지막 직함
  • 임성재<시민기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1.03 20: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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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낙마했다. 취임한지 5개월 만이다.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등 국정을 농단했다는 지적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성립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라고 답했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알았다면 그렇게 말했겠냐?”라고 반문하여 스스로 허수아비 비서실장이었음을 자인했다. 이원종 실장의 낙마를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좋은 어른을 한 분 잃은 실망감 때문이었다.

이원종 전 충북 도지사와 개인적으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도지사 재임기간 8년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솔직한 심정은 그를 닮고 싶다는 것이었다. 행정가답지 않게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씨와 유머, 일을 추진할 때 보여준 열정과 결단 그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 등에 흠뻑 반해 왔었다. 그런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발탁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대통령을 둘러싼 몇몇 실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는 이원종 전 지사 같은 분이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병풍역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려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퇴임 후 그는 “저 자신도 반듯하게 일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제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광화문전화국 9급 행정직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야간대학 졸업, 행정고시 합격, 20년 넘게 서울시청에 근무하며 주택, 보건사회, 교통, 내무국장을 역임했고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관선 충북지사, 관선 서울시장에 이르기까지 행정 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98년 민선2기 충북도지사에 당선되었고, 재선에 성공하며 충북에 `바이오산업'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도지사 3선 고지를 앞두고 그는 불출마 선언을 하고 홀연히 떠났다. 그가 퇴임하는 날 충북도청의 공무원들은 `우리는 벌써, 그가 그리워진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해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서울시 공무원이 뽑은 역대 최고의 시장', `행정의 달인'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공무원사회와 도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이원종 전 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 5개월 만에 낙마하고 국회에서 위증죄로 고발당할 수도 있는 처지가 된 것은 그 자리를 수락한 자신의 책임이다. 그가 퇴임 후에 남긴 말처럼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잘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충분히 순수한 마음으로 그럴 수 있는 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정농단의 한복판에 서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는 직함은 그에게 명예스럽지 못하다. 지난 3공화국과 5공화국 시절, 우리나라의 큰 어른이 되어야 할 존경받는 학자들과 정치가들이 독재정권에 발탁되어 일하다가 존재조차 잊혀버리는 사례를 무수히 보았듯 그도 결국 그렇게 우리에게서 잊혀갈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직함을 선택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마지막 직함은 자신이 살아온 일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걱정되는 사람이 한 분 또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이원종 박근혜 대통령 전 비서실장과 함께 충북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인 그가 마지막 직함으로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분류되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계속 1위를 달려온 그로서는 욕심이 생길 법도 하다. 그리고 그동안 그가 보여준 언행은 대선 출마에 강력한 뜻이 있음을 시사한다.

어제는 `반기문 대통령출마요청 범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주최하는 반기문 팬클럽발대식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등 반 총장과 관련한 단체들의 행사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12월 말까지 유엔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면 바로 대선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세계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이 반기문 총장의 마지막 직함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에게 대통령을 할 만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퇴임 후에 자신의 고향에서 소박하게 살며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걱정하는 온전한 큰 어른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다. 이원종 실장의 낙마를 지켜보며 안타까웠던 마음이 또다시 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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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2016-11-05 21:34:52
마지막대통령비서실장은구속되는 자리인데, 그나마 다행이네요
권력에 눈이 멀면 권력무상